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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따라 세계여행::230일] 17시간,라 세레나,오늘의 메뉴,체리세계여행/남미 2009 2011. 7. 7. 09:00반응형
0 9 . 1 2 . 1 9 . 토 | 칠레 라 세레나 Chile La Serena
정작 고속철도가 절실히 필요한 곳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칠레 아닌가 싶다.
버스 안에서 어느 새 14시간째를 맞이했다.
14시간째가 된 오전 9시에 아침식사가 나왔다.
표에는 아침식사(데사유노 Desayuno)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간식이나 마찬가지였다.
차장이 하나씩 나눠준, 버스의 담요 색과 대비되는 상큼한 연두색 상자에는 복숭아맛 주스와 과자 들어있었다.
입안이 깔깔한 아침에 딱딱한 과자라니..
입 천장을 헤하지 않는,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는
카스타드 같은 걸 줘야지...
버스 회사의 센스를 탓하는 동안에도 버스는 쉴 새없이 달린다.
출발 17시간만인 정오에 드디어 도착했다.
빠짐없이 짐을 챙기고 버스에서 내렸다.
그 어느 때보다 배낭이 무겁게 느껴지는 시간은 바로 장거리 야간버스에서 하차한 후.
밤샘 야근 근무를 끝내고 퇴근하는 축 처진 어깨의 직장인과 같은 모습으로 터미널을 나섰다.
다행스럽게도 저렴한 축에 속하는 숙소 중 한 곳이 터미널에 가까이 있었다.
가이드북의 지도와 길거리에 서 있는 길이름 표지판을 번갈아 확인하며 숙소를 찾아갔다.
여기 근처 어디인 것 같은데, 책에는 번지가 2자리인데 온통 4자리 번지 뿐이라 잠시 헤맸다.
그 때, 지나가던 어느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혹시 마리아 까사(Maria Casa)를 찾아요?"
아주머니의 친절 덕분에 덜 헤매고 쉽게 찾아 짐을 풀었다.
숙소에서 추천해 준 식당에서 힘겹게 오늘의 메뉴 중 2가지를 선택해 주문을 했다.
나는 생선 어쩌고 해 놓은 것을, 라니는 쇠고기로 알고 있는 로모(Lomo)를 시켰다.
오늘의 메뉴이므로, 지금까지 두 달 넘는 남미여행의 경험을 통해 보자면,
전채가 나오고 본 음식이 나오고 그리고 후식으로 과일주스가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바로 생선과 밥이 한 접시에 담겨져 나왔고 곧이어 스프가 나왔다.
그리고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물어볼 수 없었다.
우리는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르므로.
겨우 생존단어만 알고 있으므로.
그냥 내가 주문한 건 생선과 밥이 나오는 것이고
라니가 주문한 것은 고기가 들어간 스프인가 보다 하고 먹었다.
이 동네의 '오늘의 메뉴(Menu de hoy)'는 원래 이런 스타일인가 하며 식당을 나섰다.
밥을 먹고 나니 '17시간 버스 타기'의 피곤이 밀려들어
더욱 노곤해졌지만 그래도 나온 김에 좀 둘러보고 가자고 가이드북을 뒤적였다.
공원에서 낮잠이나 좀 잘까 하며 찾아갔다.
하나는 낮잠을 잘 만한 상황이 아니었고
다른 하나인 일본정원은 유료입장이었다.
칠레에 와서 굳이 돈 내고 일본식 정원을 구경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입구 너머로 보이는 장면만 살짝 보고 뒤돌아섰다.
그리고는 마트를 찾아갔다.
형광등과 함께 자연채광 시설을 갖춘 마트는 깔끔하고 세련된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문명의 세계에 들어온 듯한, 왠지 모를 편안함이 찾아왔다.
익숙한 느낌으로 카트를 밀며 마트 구경도 하고 사람 구경도 하면서 하나씩 주워 담았다.
스페인어로 삼겹살을 무어라 하는지 모르지만 용케 삼겹살 부위를 찾았다.
조금 더 비싸지만 우리 입맛에 맞는 초밥용 쌀을 선택했다.
상추도 싱싱한 것으로 골라 비닐봉지에 담았다.
여행하면서 더 찾게 되는 콜라도 빠트리지 않았다.
기력을 다한 칫솔을 대신할 칫솔도 신중하게 골랐다.
그리고, 과일 코너.
보기 좋게 이쁘게 담겨 있는 과일들 가운데 체리가 있었다.
과일을 아주 많이 좋아하는 라니, 그 중에서도 손에 꼽는 체리.
한국에서는 비싸서 감히 눈도 돌릴 수 없는 체리.
바로 그 체리 앞에서 라니는 열광했다.
1kg에 1,469페소.
계산기를 두들겨 보니 우리 돈으로 3,200원.
라니는 홀린 듯 비닐봉지를 뜯어와 마구 담아대기 시작했다.
체리를 먹어본 기억도 아련하고 맛있었다는 기억은 더더욱 나지 않는 나는
저녁 식사 후에야 라니의 그런 행동과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삼겹살을 구워 쌈장 부재의 아쉬움 속에 밥과 함께 상추에 싸 먹는
오랜만 한국식 식사 후 먹은 체리에 나는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체리맛 캔디의 화학적 체리맛에 더 익숙했던 입이 드디어 진정한 체리맛을 본 것이다.
시지도 않고 탱글탱글한 과육. 두 달 전, 처음 칠레에 와서 먹은 오렌지도 그랬고
칠레는 일단 과일로 우리를 사로 잡고 있다.
내일도 마트에 들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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