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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묘일기] 16세 고양이와 고난의 3개월
    고양이/쿠키와지니 2020. 2. 29.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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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10월 13일 월

    16년 5개월 된 지니, 얼마 전부터 꼬리를 자주 그루밍하기 시작했다. 왜 저럴까? 생각은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한번씩 그럴 때가 있었으니까.

     

    이 날은 유독 겪하게 그루밍을 하는 것 같아 붙잡고 꼬리털을 파헤쳤다. 꼬리 끝단에 빨간 종기 같은 것이 있었다. 아차 싶었다. 왜 진작 확인해 보지 않았나, 자책했다.

     

    이미 늦은 밤, 병원은 날이 밝길 기다려야하니 더이상 핥지 못하게 해야할 것 같았다. 넥카라가 확실하겠지만 불편할테니 꼬리에 붕대를 감아볼까 했다. 쉽지 않았다. 몇번의 실패 끝에 확실하게 고정을 했다. 하지만 금새 이빨로 물어 뜯어려했다. 어쩔 수 없이 넥카라를 채우고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기다렸다.

     

    10월 14일 화

    17년 7개월 된 쿠키의 건강이 호전되어서 한동안 찾지 않았던 동물병원을 다시 찾았다. 종기라 생각했던 것은 염증이라 하셨다. 털을 더 정리해보니 이빨로 심하게 씹은 자국이 있었다. 핥기만 하는 것으로는 견디기 힘들었던걸까?

     

    나이든 고양이들의 경우 심장이 안좋아지면서 혈전이 생기면 귀 끝, 발 끝, 꼬리 끝 같은 신체의 끝부분에서부터 문제가 생긴다고. 청진기를 심장에 대어보시더니 다행히 심장 박동은 괜찮다고 하셨다. 일단 염증과 상처가 나아야하므로 뿌리는 항생제를 주셨다. 설명도 듣고 약도 받아오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집에 있던 넥카라는 크기가 크지 않아 씌워도 꼬리 끝에 입이 닿았다. 얇은 플라스틱을 덧대어 길이를 늘렸다. 입이 꼬리에 닿지 않게 되었지만 너무 길다보니 밥과 물을 먹을 수 없다는 문제가 생겼다. 둘이서 자는 시간을 조절해 가며 넥카라를 씌워놓은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애쓰기로 했다. 먹는 것과 화장실 가는 것에 큰 지장이 없다 하더라도 넥카라를 씌워놓으면 얼마나 불편할까, 보는 우리가 더 답답해서 예전에도 아플 때 그렇게 했었었다.

     

    10월 18일 금

    아침 저녁으로 항생제를 뿌려줬지만 흐르는 시간에 비해 호전되는 정도는 더디게만 느껴졌다. 조급한 마음에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원래 꼬리 끝부분은 쉽게 낫지 않는다고 하시며 먹는 약을 주셨다. 혈전용해제. 이제 조금 더 빨리 나으려나. 

     

    10월 22일 화

    더디지만 잘 아물며 나아가는 듯 했다. 그래서인지 방심을 했다. 넥카라를 풀어놓은 상태에서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꼬리를 또 물어버렸다. 특이한 것은 가만히 잘 있다가 갑자기 꼬리를 공격하듯이 사냥하듯이 물어버리는거였다. 바로 옆에 두고 있어도 너무나 빠른 속도로 움직여 막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조금이라도 덜 불편하게 해 주고 싶었는데 오히려 화를 키우는 꼴이 되어버렸다. 지난 일주일 간 했던 노력이 많이 상실되었다.

     

    10월 24일 목

    빨리 낫지는 않고 아이의 행동은 이상해 보이고 우리의 마음은 불안해져만 갔다. 희망의 동앗줄을 찾고 싶은 조급함이 발동했다. 다니는 병원보다 두 배는 더 멀리 있는, 좋은 병원이라는 후기가 많은 동물병원을 찾아갔다. 

     

    하지만 절망의 탄식을 내뱉어야했다. 꼬리를 절단해야한다는 정말 청천벽락 같은 설명을 들었다. 염증이 때문에 꼬리를 문다기 보다는 스트레스 등의 여러가지 요인으로 꼬리를 무는 습성을 보이는 것이라고 하셨다. 넥카라를 하고 약을 써서 상처 부분이 나아도 다시 꼬리를 무는 행동을 반복해 상처가 생길 것이라는 것. 임상적으로도 그렇도 관련 논문도 있다며 꼬리를 자르는 것이 원천적이 해결 방법이라고.

     

    그리고 마침 당일 오전에 비슷한 증상 때문에 한 고양이의 꼬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했다고 하셨다. 그 보호자도 두 달전부터 노력을 했지만 허사였고 하는 수 없이 절단을 선택했다는 얘기도 들려주셨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바로 '그럼 잘라주세요'라고 말할 반려인이 누가 있을까? 하다하다 정말 방법이 없다해도 나이가 많다 보니 수술을 쉽게 생각할 수 없다.

     

    일단 연고를 바르고 붕대를 아주 노련한 손길로 감아주셨다. 일주일 후에 다시 경과를 보기로 했다.

    편하게 자고 있는데도 괜히 안스러워 보였던 날

    *

    여기까지 일별로 정리하다 여러가지 이유로 그만 두게 되었다. 어느새 넉달이 지났다. 다행히 지니의 꼬리의 상처는 잘 아물었고 더이상 꼬리를 공격하지도 깨물지도 않는다. 1월 21일부터 넥카라를 사용하지 않았다. 약 석달동안 지니도 우리도 모두 고생했다. 정말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특히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갔던 그 병원에서 꼬리를 잘라야한다는 진단을 생각하면 아찔하고 그만큼의 안도감을 가지게 된다.

     

    그 선생님이 오진한 것에 대해서 원망하지 않는다. 그 때의 증상에 대해 이론적 지식과 임상적 경험을 충분히 가지고 있음을 진료시간에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16세가 넘는 나이를 고려해 조금 더 유연한 제안을 해 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

    꼬리 절단을 권유했던 병원의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은 아마도 FHS(Feline Hyperesthesia Syndrome, 고양이 감각(지각)과민 증후군)인 것 같다. 진료시간에 들은 내용과 비슷했고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의 증상 중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 

     

     

    Feline hyperesthesia syndrome - Wikipedia

    Feline hyperesthesia syndrome, also known as rolling skin disease, is a rare[1][citation needed] illness in domestic cats that causes episodes of agitation, self-mutilation, and a characteristic rippling of the skin when touched. It is often described as a

    en.wikipedia.org

     

     

    [반려동물 건강이야기] 고양이 등이 꿀렁꿀렁, 혹시 지각과민증후군? - 헬스경향

    “선생님, 저희 고양이 등이 꿀렁거려요. 피부가 움찔움찔하다가 막 뛰어다녀요. 혹시 지각과민증후군인가요? “이런 문의를 하는 보호자를 종종 본다. 이럴 때 내 대답은 99% “아니오”다. 인터넷 동호회에서 ...

    www.k-health.com

    지니가 정말 뇌에 이상이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더 이상 꼬리를 갑자기 미친듯이 공격하거나 깨무는 행동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는 FHS는 아닌 것 같다고 추측된다. 염증에 의해서, 그리고 약을 바르고 나아가는 과정에서 그런 행동이 지속되었던 것 같다.

     

    *

    꼬리 절단이라는 충격적인 진단을 받은 날, 꼬리에 약을 바르고 거의 꼬리 전체를 붕대로 감아주셨다. 그리고 바르는 약을 처방 받았다. 약국에 들러 붕대와 의료용 테이프를 구입했다. 꼬리도 답답하고 불편하게 붕대를 감았는데 거기다 넥카라까지 하는 건 고문 같다는 생각에 넥카라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두니 지니는 금방 붕대 끝을 물어뜨기 시작했고 이내 붕대는 조금씩 이탈하기 시작했다.

     

    안되겠다 싶어 이틀 후인 10월26일, 원래 다니던 한림의 동물병원을 찾았다. 다른 병원 진료와 꼬리 절단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잦아들지 않는 꼬리 공격에 대해 여쭤보니 감각이 예민해 진 것인지 아니면 염증에 의한 것인지 조금 더 두고 보자는 말씀과 함께 항생제 주사를 놓아 주셨다. 당분간 약효가 지속되니 뿌리는 항생제는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11월 4일, 11월 26일 상태 확인차 병원을 다녀왔다. 염증이 났던 꼬리 끝의 상태는 점점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갔다. 꼬리를 공격하는 행동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12월 초 이제 모든 것이 다 정상으로 되돌아왔다고 생각돼 넥카라를 풀어놓은 채로 외출했다. 한참 있다 돌아왔더니 꼬리 끝에 피가 묻어나 있었다. 아뿔싸.

     

    넥카라를 하고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둘이서 자는 시간을 조절해 왔다. 나는 평소와 달리 밤 9시에서 10시 사이에 잠들고 새벽 4~5시에 일어났다. 지니가 자는 동안에는 책상 곁에 두고 감시하고 일어나 움직이면 졸졸 따라 다니며 꼬리를 공격하지 못하게 했다. 화장실에 가야하면 잠깐 넥카라를 씌워뒀다. 아침 잠이 많은 나에겐 쉽지 않은 생활이었다. 이제 해방인가 했는데... 긴 터널에서 이제 나왔다 싶었는데 햇빛 잠깐 보고 다시 터널에 진입한 느낌이었다.

     

    다행인 것은 처음과 달리 상처가 깊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꼬리는 금방 나았다. 문제는 꼬리를 공격하고 깨무는 행동. 함께 있는 동안 살펴보면 별다른 이상 행동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한번 실패를 경험하고 나니 넥카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또다시 물거품 앞에 좌절하느니 1000%의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조금 더 여유를 가지기로 했다.

     

    그리고 1월21일, 넥카라를 보관 상자에 넣게 되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 더 지난 2월 29일 오늘까지 넥카라를 다시 꺼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요즘은 활기가 넘친다. 16세 고양이, 두달 반 뒤면 17세가 되는 고양이가 맞나 싶을 정도의 활력을 보여주고 있다.

     

    2020년 2월 29일의 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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