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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묘 일기] 또 다시 휘청고양이/쿠키와지니 2019. 5. 24. 10:42반응형
지난달, 4월 28일, 그러니까 17년 1개월이 된 달.
우리 고양이 쿠키의 휘청거리는 걸음에 마음이 철렁했다는 기록을 남겼었다.
노화로 인한 증상으로 별다른 치료 방법이 없을 것으로 판단해 일단 주말 동안 살펴보기로 했었다.
다행히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꼬리를 내린 채로 걷는다는 것, 살이 더 빠졌다는 것이 신경 쓰였지만 그 외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늦잠을 자는 날, 잠에서 깼지만 게으름을 더 부리고 싶어 침대에서 부스럭거리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놓은 방문 앞에 앉아 우렁찬 목소리로 일어나 어서 나오라고 울부짖는 것도 변함없었다.
싱크대에서 습식사료를 준비하면 뒷다리로만 서서는 앞다리로 싱크대 문을 박박 긁는 것도 여전했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뚜벅뚜벅 걸어와 앵앵거리며 반겼다.
이 날도 그랬다. 5월 21일. 17년 2개월.
하루 종일 멀쩡했었는데 저녁에 갑자기 또 휘청거렸다.
갈 곳 잃은 전기밥솥 하나를 싱크대 끝자락에 두었는데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하면 언젠가부터 꼭 밥솥 위에 올라가 부엌을 주시하며 울어댔다.
여느 때처럼 너네만 먹지 말고 나도 맛있는 것 좀 달라는 냥 밥솥 위에 올라가 시위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갑자기 어떻게 된 일일까?
놀란 마음 어쩔 줄 모르며 두 팔로 안았다.
정신은 멀쩡해 보였지만 사지에 힘이 없어 보였다.
한참을 안고 있었다.
나이가 들며 안겨 있는 걸 좋아했고 안고 있으면 앞다리로 꾹꾹이를 열심했었다.
그랬던 사랑스러운 아이가 한없이 힘없는 모습으로 가만히 안겨 있었다.
언제까지 계속 끌어안고 있을 수는 없어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았다.
비틀거리며 가까스로 걷는 모습에 마음이 조여왔다.
평소에도 부엌 바닥에 놓인 걸레에 몸을 뉘이는 걸 좋아해 깨끗한 수건을 깔아 두곤 했는데 이번에도 힘든 발걸음으로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무거운 시간이 흐르는 밤이었다.
저번처럼 일시적인 것이면 좋겠다 싶었다.
다음 날, 5월 22일.
어제보다 나은 듯 하지만 걸음걸이는 예전 같지 않다.
습식 사료를 준비하니 얼른 달라고 보채고 길고양이 사료를 옮겨 담고 있으니 힘든 발걸음으로 다가와서는 맛 좀 보자는 눈빛을 내보이기도 했다.
식욕이라도 잘 살아있는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 없었다.
오전 일을 끝내고 점심을 먹고 늘 가는 한수풀 동물병원에 전화를 했다.
수술 중이시라 3시 이후부터 진료가 가능하다는 말씀을 전달받았다.
그 힘없는 다리로 이동장에 들어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병원에 가봐야 별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실낱 같은 희망으로 조금이라도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마음으로 달려갔다.
언제나 편안한 미소로 반겨주시는 선생님.
촉진을 해 보시고는 근육량이 너무 많이 줄었고 그로 인해 걷는 것이 힘든 게 아닌가 싶다 하셨다.
관절이나 다른 부위에 이상은 없는 것 같다고도 하시며 일단 피검사는 한번 해보자 해서 그러기로 했다.
그동안 얼마나 건강하게 지냈는지 주사 바늘 꽂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다.
그러니 이 낯선 상황이 얼마나 무서울까?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채혈이 한 번에 잘 될 수 있도록 붙잡아야 했다.
잘 걷지 못할 정도로 힘도 없으면서 두려움에 온 힘으로 움찔거리는 아이를 잡고 있으려니 손과 마음이 분리되어 따로 노는 것 같았다.
다행히 노련한 선생님은 단번에 피 뽑기에 성공을 했다.
모두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쿠키는 곧바로 곁에 있던 이동장으로 숨어들었다.
15분 후 결과가 나왔다.
면역력이 조금 떨어진 것 외에 다른 이상은 없었다.
결국 노화에 의한 증상이므로 병원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 또한 별달리 없었다.
노령묘 돌봄에 대한 몇 가지 조언을 구하고 마무리 지었다.
병원 다녀오느라 고생한 쿠키, 집에서 홀로 기다린 지니.
병원에서 사 온 차오츄르를 오랜만에 짜줬다.
많이 힘들었을텐데 식욕은 변함없는 쿠키를 보고 있노라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많은 생각이 오고 가는 날이었다.
2019년 5월 22일 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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