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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묘일기] 고마웠어, 무지개 다리 건너에서 건강히 잘 지내고 있으렴
    고양이/쿠키와지니 2020. 4. 22.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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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키가 곁을 떠난 지 어느새 2주가 되었다. 잘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마음은 처참히 무너졌고 빈자리는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나 크게 느껴진다. 다행히 시간이라는 약의 효능은 변함이 없어 구멍 난 것 같던 마음의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 가고 있다.

     

    만 16세가 되던 해부터 다리를 저는 모습이 이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좋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이 되었다. 만 17세가 된 작년에는 다리를 저는 빈도가 늘어나고 나는 것처럼 책상 위로 뛰어오르던 모습은 사라졌다. 그리고 의자에 조차 스스로 올라오지 못하게 되었다. 장의 기능도 퇴화되어 설사하는 날이 많아졌다. 헤어질 날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졌다.

     

    작년 여름에는 올해를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예상도 조심스럽게 했었다. 다행히 18세가 되었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조금 더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곁을 떠나 무지개 다리를 건너더라도 담담히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물 조차도 제 힘으로 마시지 못해 주사기로 입에 넣어주고 눈의 촛점을 잃어가고 마침내 숨을 헐떡이며 힘겨운 호흡을 하고 천천히 멎어가는 심장 박동을 느끼면서 담담이라는 단어도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마당 한편에 고이 묻고 뭉쳐진 흙을 손으로 으깨어 부드럽게 만들어 뿌리면서는 몸도 마음도 다 주저앉고 말았다.

     

    차가워진 몸을 쓰다듬으며 작별의 인사를 나눌 때에도, 묻을 자리의 흙을 퍼내면서도 참아내었던 눈물은 다 묻고 난 후 봉분을 다듬으며 왈칵 쏟아져 나왔다. 사는 내내 한번도 크게 아프지 않고 끝까지 착하게 있다 간 것이 고마워 이별의 슬픔이 더 크게 느껴졌다.

     

    정말 고맙다. 젊을 때에도 많이 아파서 병원 자주 다니고 약을 달고 사는 고양이들도 많다. 쿠키는 큰 병치레 없이 살아줬다. 동물병원 하나 없는 시골 마을에 이사 오며 혹시나 크게 아프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건강하게 묘생 후반기를 지내주었다. 그러고 보니 9세 때 제주도에 왔으니 묘생의 절반을 제주도에서 보냈구나.

     

    한참 바쁠 때 손이 많이 가는 시기가 되었다면 쿠키도 우리도 힘이 들었을텐데 정말 감사하게도 시간적 여유가 많은 시기에 떠났다. 거기다 우리 둘이 함께 있을 때 떠난 것 또한 감사한 일이다. 

     

    떠나기 며칠전부터는 바로 옆에 있는 화장실에 걸어가는 것조차 힘들어 화장실 앞에 소변을 보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었다. 어떻게 겨우 화장실에 들어갔어도 다리에 힘이 없으니 무른 대변을 힘겹게 누고 엉덩이에 묻히는 경우도 생겨났다. 이제 꼼짝없이 옆에 붙어 간호를 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어차피 외출은 자제하고 있는 시기인 데다 휴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터라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지만 교대로 잠을 자며 돌보아야 하는 상황은 만만하지 않을 거라는 염려를 낳았다. 그런데 그 힘들 뻔했던 시기를 최대한 줄여주고 떠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쿠키는 우리에게 고마움만 남겨주고 떠났다. 

     

    둘이 다정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같이 있던 엄마가 사라지면 딸 지니에게 좋지 않은 영향이 가면 어떻하나 했는데 다행히 지니는 평소와 다름없이 쾌활하게 잘 지낸다.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맛동산도 잘 만들며 애교도 변함없다. 그건 다행인데 아직까지는 그 다행스러움이 빈자리를 다 채워주지는 못하고 있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현관문을 열며 쿠키, 지니~ 하고 외쳤는데 이제는 지니만 불러야한다. 차오츄르를 꺼내면 지니만 달려온다. 사료와 화장실 모래 줄어드는 속도가 현저히 줄었다. 사실 따져보면 쿠키가 살아 있을 때 눈을 마주치며 교감하는 시간을 다 합해봐야 24시간 중에 얼마 되지도 않는다. 우리가 자는 시간, 쿠키가 자는 시간, 우리가 일하는 시간, 놀러 간 시간 다 빼면 정말 한 줌의 시간일 뿐이다. 하지만 존재의 부재는 너무나 크게 느껴진다.

     

    마치 공기 같다. 있을 때는 당연한 듯 무감각하게 들이쉬지만 없으면 당장 자각하게 되는 것처럼. 때로는 영화 장면처럼 쿠키의 생전 모습이 그려진다. 떠나기 전 한동안 머물렀던 상자가 있던 자리와 주방의 지정석에서. 사랑했던 존재와의 재회 불가능한 이별의 아픔은 너무나 크다. 하지만 슬픔에 잠겨 있는 모습을 쿠키도 원하지 않으리라 스스로를 다독이며 마음을 다잡는다. 무지개 다리 건너편에서 건강히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다.

     

    우리 곁을 떠나기 전날 밤, 쿠키 살아있을 때 찍은 마지막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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