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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묘일기] 쿠키, 무지개다리 건너기 전 보름간의 기록
    고양이/쿠키와지니 2020. 5. 4.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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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우리 고양이 쿠키가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허전함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싶었는데 삶은 또 어떻게든 이어진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삶을 함께 하는 존재가 점점 늙어가고 숨을 거두는 과정을 겪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조언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고 상상만 하던 일이 어느 날 갑자기 현실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아직 집에는 곧 17세가 되지만 영영 귀여운 인형으로 영생할 것 같은 고양이가 한마리 더 있다. 하지만 그 느낌은 헛된 바람일 뿐이고 지니도 머지않은 시기에 쿠키가 지나간 길을 가게 될 테니 쿠키와 겪은 시간을 기록해 두고 마음의 준비를 다져가야 할 것 같다. 쿠키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전 2주일간의 기록. 매일 기록을 남겨둔 것이 아니어서 정확하지 않다. 간간히 찍어둔 영상과 물건 구입의 기록을 바탕으로 기억을 되짚어 남겨둔다.

     

    *

     

    근육은 이미 한참 전부터 거의 상실된 상태였다. 걷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다. 종이상자 안에 종이상자 보다 높이가 낮은 스티로폼 상자를 넣고 담요를 깔아놓은 것이 있었는데 이 곳을 떠나기 보름 전 무렵부터 고정 자리로 쓰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쉽게'라는 단어를 쓰기 민망할 정도로 그냥 들어갔을 높이의 상자인데 다리에 힘이 없다 보니 상자에 올라가는 것조차 힘들어 단을 만들어줘야 했다. 또 다른 난관은 화장실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들락거렸던 화장실인데 그 얼마 되지도 않는 화장실 턱이 쿠키를 힘들게 했다. 화장실에도 단을 만들어줬다.

     

    그리고 또 다른 화장실 문제가 생겼다. 대변은 그나마 화장실 안쪽으로 들어가 눴는데 소변은 언젠가부터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그러니까 엉덩이를 화장실 입구에 대고 소변을 봤다. 날이 갈수록 짧은 몇 발자국도 떼기 힘들었는지 엉덩이가 화장실에 덜 들어간 채로 소변을 보는 일이 한번씩 일어났고 점점 횟수가 잦아졌다.

     

    처음에는 화장실 앞 단으로 종이상자를 뒀는데 소변을 화장실 밖에 보는 일이 일어나면서 젖어버려 쓸 수 없게 되었다. 집에 안 쓰는 타일이 있어 타일로 계단을 만들었다. 소변 실수가 잦아지니 타일을 씻어내고 바닥을 닦는 일이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강아지용 배변 패드를 주문했다. 이 또한 무지개다리 건너기 보름 전이었다.

     

     

    배변패드는 화장실 앞 단에도 깔아야 했지만 쿠키가 하루의 대부분을 머무는 자리에도 깔아야 했다. 장이 좋지 않아 단단한 맛동산을 만들지 못하고 무른 변을 누는 경우가 많고, 다리에 힘이 없으니 엉덩이에 변을 묻히는 일도 이따금씩 생겼다. 우리가 보지 못한 사이에 대변을 보면 엉덩이에 변이 묻은 채 그대로 자기 자리로 돌아가 담요에도 변을 묻히게 되는 거였다. 

     

    이때만 해도 2주 후에 쿠키가 떠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장기전을 예상했다. 근육이 없어 걷는 것이 힘들 뿐 정신은 온전했으므로 적극적인 돌봄이 긴 시간 이어지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배변 패드도 아주 많이 주문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몸이 많이 불편하더라도 조금이나마 더 곁에 있다 가길 바라는 마음이 무의식 중에 들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화장실도 초대형으로 주문했다. 몸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니 화장실 내에서 돌아서는 것도 쉽지 않고 배변도 불편해 보였다. 화장실 덮개를 분리한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덮개 없는 화장실 중 가장 큰 걸 찾아서 주문했다. 떠나기 11일 전이었다. 토요일에 주문한 데다 섬의 시골 마을에는 택배 배송이 보통 2박 3일이 걸려 화장실이 도착하는데 5일이 걸렸다. 진작 신경 써서 주문할걸, 도시에 살았으면 하루라도 더 빨리 받았을텐데... 자책했고 평소에는 불편하지 않던 일도 원망스러웠다.

     

    대형 화장실이 오는 동안에는 화장실에 들어가기 직전에 소변을 봐버린 일도 일어났다. 마음이 정말 많이 아팠다. 몸이 좋지 않아 화장실을 목전에 두고 소변을 봐버리다니. 그런 후 자기 자리로 힘겹게 돌아가는 그 짧은 걸음이 얼마나 참담했을까?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엉덩이를 그루밍하지 못한 채 찝찝하게 그냥 있을 수밖에 없음은 또 어떻고.

     

    혼자 두는 시간을 최소화해야 했다. 둘이서 잠자는 시간을 조절해 새벽의 3~4시간 외에는 항상 둘 중 한사람은 쿠키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수시로 쿠키의 상태를 확인하고 화장실은 항상 편히 쓸 수 있도록 청소를 자주 했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었던 화장실은 줄자로 크기를 가늠해 대강 느낌을 알고는 있었지만 받아보니 정말 크게 느껴졌다. 크기는 만족했는데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면적에만 집중해 높이를 확인하지 않은 거였다. 기존의 화장실보다 더 높았다. 단을 더 만들어주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오르기 쉽게 단과 단 사이의 높이를 낮게 하려면 단이 많아져야 하고 그만큼 화장실까지 걸어야 하는 거리가 늘어났다. 하는 수 없이 출입구 쪽 벽면의 일부를 실톱으로 잘라내고 사포질을 해 턱을 낮췄다.

     

    떠나기 이틀 전, 늘 다니던 병원에 갔다. 특별히 상태가 안 좋아져서는 아니었고 지금의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쿠키를 보여드리고 조언을 구하려 했다. 눈에 이물질이 많이 껴 그것에 대한 조치로 항히스타민과 항염증 성분이 있는 주사를 맞았고 비타민 주사도 한방 맞았다. 건사료는 먹이는 것이 좋지 않겠다시며 수술 후 회복할 때 먹는 아주 부드러운 습식 사료를 주셨다. 식욕촉진제, 소화기능 향상제와 함께.

     

    큰 아픔 없이 편안하게 있다가 가기만을 바랄 뿐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특별히 없다고 하셨다. 많이 힘들어하면 진통제 등을 줄 수도 있지만 나이도 많은 데다 상태가 좋은 상황도 아니므로 오히려 몸에 무리가 갈 수 있다는 말씀도 주셨다.

     

    병원에 다녀오고 나서는 돌보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 대소변을 보고 싶어도 화장실에 못 가는 건 아닐까 싶어 이따금씩 들어다 화장실에 놓아주었다. 물을 마시러 자기 자리 바로 앞에 있는 물컵으로 걸어 나왔지만 한 모금 마시고 주저 앉았고 저녁에는 아예 입도 못 대고 주저 앉았다. 하는 수 없이 병원에서 받아온 주사기로 입에 물을 넣어줬다. 주사기가 낯설어서 그런지 고개를 돌리며 피했다. 얼굴을 붙잡고 강제로 조금씩 밀어 넣었다.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병원에서 받아온 습식사료를 숟가락에 조금 담아 입에 가져다 댔지만 조금 먹는 시늉만 하고 거부했다. 설사 때문에 잘 주지 않았던 차오츄르를 꺼내 줬지만 그것마저도 먹는 둥 마는 둥이었다. 뭘 좀 먹어야 힘을 낼 텐데 흡입하듯 먹던 차오츄르마저 먹질 않으니 마음이 답답해져 왔다. 저녁에는 식욕촉진제를 물에 섞어 주사기로 강제 급여를 했다. 

     

    병원에서 따뜻하게 해 주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들었다. 사용하지 않고 방치해 둔 전기방석이 마침 있어 담요 아래에 깔아줬다. 계속 뒤척이다 겨우 잠에 든 듯 했다. 조용히 밤이 깊어갔다. 잠깐 한숨을 돌리며 자정이 되었다. 인기척이 들려 가보니 화장실 앞에 배를 깔고 주저앉아 있었다. 이미 패드가 젖어 있었다. 들어서 화장실 모래 위에 내려주니 남은 소변을 마저 봤다. 

     

    회복식 사료를 뜯어서 티스푼에 아주 조금 떠서 입에 가져다 댔지만 고개를 돌렸다. 다시 시도할 때마다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피했다. 힘없는 아이가 이럴 땐 어디서 그렇게 힘이 나오는지... 괜히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조금 있다 다시 줘 보기로 했다.

     

    그렇게 새벽 시간은 반복의 흐름이었다. 화장실에 데려다 소변을 시도하고 사료와 물을 주사기로 먹여줬다. 쿠키는 계속 뒤척이며 자기 자리를 이탈했다. 다시 담요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으면 이리 누웠다 저리 누웠다 하다 몸이 담요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아침에 커피 내리고 있으니 쳐다보며 소리 내어 울었다. 한번씩 먹었던 우유 거품이 기억난 듯 했다. 숟가락으로 조금 떠서 주니 엄청 잘 먹었다. 소화기능 향상제를 우유에 타서 조금 더 먹였다. 기운 좀 차리면 좋겠다. 점심시간이 되어 갈 때 즈음에는 템테이션도 2개나 먹고 물도 적극적으로 제법 마셨다. 

     

    데려다줘야 하긴 했지만 어쨌든 오후에도 소변 보고, 주사기로 입에 넣어줘야 했지만 어쨌든 잘 받아먹었다. 상태의 곡선이 하향에서 상향으로 바뀌는 것일까? 제발! 그런데 문제는 대변이었다. 소변은 간간히 보는데 이틀 동안 대변을 보지 못했다. 걱정이 되어 병원에 전화를 했다.

     

    만약 오늘도 대변을 못 누면 내일 병원에 방문하기로 했다. 관장을 할 수도 있고 약을 먹여보는 방법도 있다고. 일단 오늘은 장 마사지를 해 보라고 하셨다. 전화를 끊고 배를 부드럽게 좀 만져줬더니 누운 자리에서 바로 소변을 봐 버렸다. 대변도 같이 봤으면 좋았을 텐데... 우유를 먹으면 설사를 하곤 했었던 기억에 우유를 조금 더 먹여보기도 했지만 허사였다.

     

    그리고 다시 반복의 시간. 화장실, 주사기.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 먼저 자러 들어가려던 아내가 혹시나 하며 물그릇을 입에 가져다 대니 직접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얼마나 기쁘던지. 한참을 많이도 마셨다. 얼마나 기특하던지. 그래서 차오츄르를 뜯어다 또 입에 대어 주니 혀를 날름거리며 스스로 먹어냈다. 절반 정도를 혼자 힘으로 먹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자정을 넘기며 뒤척임이 끊이지 않았고 많이 힘들어하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함께 지내오며 말이 통하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번씩 하고는 했는데 말이 통하지 않음이 더없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지 말을 해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저 쓰다듬어주는 것 밖에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답답했다.

     

    새벽 3시가 넘어가며 서서히 뒤척임이 줄어들었다. 잠이 든 것일까? 고요했다. 힘들게 잠든 것이라면 깨우고 싶지 않아 물러나며 숨을 쉬는지만 확인하며 지켜보았다. 4시가 다 되어갈 무렵 깬 것 같아 회복식 사료를 물에 타 주사기로 먹이려 했다. 하지만 입을 전혀 열지 못했다. 눈에도 힘이 없었다. 입에 주사기 끝만 겨우 넣어 먹여보았다. 힘들어하며 거의 먹지 못했다.

     

    한시간 뒤부터는 의식 없이 숨만 쉬는 듯한 느낌이었다. 주사기를 입에 대어도 반응이 없었다. 주사기를 눌러 물이 나와 입에 닿으면 다리가 움찔거렸다. 6시 즈음 약간 의식이 돌아온 듯 해서 주사기로 물을 줬다. 이번에도 거의 먹지 못했지만 그래도 두어번 입을 쩝쩝거리며 먹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아니기를 바랐다. 이렇게 급격하게 상태가 나빠지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지금까지 그랬듯 안 좋아졌다가 다시 좋아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의식은 점점 희미해져 갔고 어느 순간 입을 벌리고 숨을 헐떡이며 쉬었다.

     

    놓아주어야 할 때가 온 거였다. 알아들을 수 없겠지만 고생했다고 고마웠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헐떡이던 숨마저 멈췄다. 심장에 대고 있던 손가락에는 여전히 박동이 전달되었다. 움켜쥐고 싶은 실낱 같은 얇은 움직임. 붙잡아 다시 과거로 잡아당기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2020년 4월 8일 오전 9시 9분. 그렇게 쿠키는 이 세상을 떠났다.

     

    2002년 3월 - 2020년 4월

     

    다음 세상이 있다면 그곳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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