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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따라 세계여행::212일] 안데스를 기어 오르는 장거리버스세계여행/남미 2009 2011. 5. 25. 09:30반응형
0 9 . 1 2 . 0 1 . 화 | 페루 쿠스코(꾸스꼬) Peru Cuzco
자다가 처음으로 깼다.
새벽 다섯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여기는 쿠스코행 버스 안.
가이드북 가라사대 '15시간 소요'.
그렇다면 이제 삼분의 일쯤 지난 것이다.
짧은 한숨을 내쉬고 다시 눈을 감았다.
깊이 잠들지 못했다가 6시쯤 다시 일어나 버스 안의 화장실을 다녀왔다.
지겨운 의자에 돌아와 앉았는데 몸에서 이상한 반응이 나타났다.
갑자기 숨쉬기도 힘들어지고 토할 것 같이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도 생전 느껴보지 못한 희한한 느낌으로 아팠다.
점점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그런걸까?
길이 너무 구불구불해서 그런걸까?
증세도 별나 맞는 약도 없고
취할 수 있는 조치도 없어
그냥 일단 견뎌내 보는 수 밖에 없었다.
눈을 감았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고 다행히 조금씩 나아졌다.
자고 깨기를 반복하다 9시쯤에 아침을 먹었다. 빵과 커피가 나왔다.
쉬지 않고 달리는 버스에서 자고 먹고 싸기가 반복되고 있다.
아침을 먹고 나서는 영화 상영이 이어졌다.
자다 일어나니 아이스에이지가 하고 있었다.
아이엠레전드는 영어자막으로 대충 이해하며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다.
에콰도르의 버스에서도 봤던 2012는 보다가 잤다.
자고 일어나도 여전히 산이다.
조금 더 가니 마을이 나타났다.
이 첩첩산중 마을의 터미널에서 잠깐 쉬어간다.
과연 끝이 날까 싶은 이 길고 긴 버스여행의 지루함을 달래주려 빙고게임이 시작되었다.
승무원이 번호를 하나씩 불러주고 모니터에도 표시가 된다.
귀 쫑긋, 눈 반짝. 잠깐 생기가 돈다.
버스는 능선을 따라 난 길을 천천히 달려 올라갔다. 터널 따위는 하나도 없다.
우리나라 같으면 진작에 긴 터널 뚫고 높다란 다리 놓아 고속도로를 만들었을텐데
여긴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알 수 없는 다른 이유 때문인지
산이 난 모양을 헤치지 않는 길을 내어 천천히 달린다.
(지루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이 편이 낫다.)
그렇다 보니 S자 코스의 연속이고 멀미 나기 십상인 여정.
거기다 점점 높은, 우리나라의 높은 곳과는 차원이 다른,
높은 곳으로 계속 올라가니 고산병도 틈틈히 엄습의 기회를 노린다.
그래서 이 구간을 힘들게 지난 여행자들의 얘기를 인터넷에서 미리 볼 수 있었다.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멀미와 친한 사이인 라니.
열대여섯시간의 대장정, 먹는 것도 없이 계속 토하고 떡실신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다.
잉카의 신이 보우하셨는지 토 한번 없이 긴 시간을 잘 보냈다.
둘 다 머리가 조금 아프고 속이 조금 불편했지만 멀미는 하지 않았다.
천만다행이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남아도는 시간.
사색하기 좋은 기회이지만 쉽지 않았다.
생각은 깊이 있게 파고 들지 못하고
꼬리의 꼬리를 문 채 자꾸 옆으로만 뻗어나갔다.
그리고 어서 빨리 땅에 발을 딛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마무리가 지어졌다.
아무리 길고 지루한 영화도 끝이 나 듯,
버스도 어느 새 쿠스코로 접어들었다.
늘어져 있던 버스 안이 부산스러워졌다.
꺼내 놓았던 잔짐을 정리하고 머리와 옷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간밤에, 자정 넘어 탄 버스는 오후 3시를 넘겨서 쿠스코에 도착했다.
드디어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에 온 것이다.
마추픽추도 한결 가까워졌다.
설레임에 긴 여정의 피곤을 녹여본다.
한창 친구들과 뛰어놀 아이가 돈을 벌러 다닌다. 가여운 아이는 그래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택시 4솔 부르는 걸 3솔로 깎고 숙소로 이동.
.길도 좁고 숙소가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에 있어 택시에 내려서도 한참 뚜벅뚜벅.
.자기 가게에서 지도까지 꺼내와 길을 알려주는 분 덕택에 쉽게 찾아 숙소 도착.
.아르마스광장쪽으로 내려가다 식당에서 늦은 점심.
.로모 살따도(Lomo Saltado), 세비체(Ceviche).
.아르마스광장 부근 약국에서 고산병 약, 소로체(Soroche) 구입.
.수퍼에서 라면 등 먹을거리 구입.
.수면, 8시반에 일어나 라면에 계란 풀어 저녁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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