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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따라 세계여행::135일] 비 내리는 스산한 니스에서의 하루
    세계여행/유럽_지중해_모로코 2009 2010. 10. 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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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9 . 0 9 . 1 5 . 화 | 프랑스 니스 France Nice


    이탈리아에서 모두 한인민박에서 묵어
    지난 열흘이 조금 넘는 날 동안은 매일 아침 저녁을 한식으로 먹었다.
    한국에 있을 때 못지 않게, 때로는 한국에 있을 때 보다 더 잘 먹고 다녔다.

    그리고 오늘, 참 오랜만에 빵과 커피로 아침을 시작한다.
    여기는 프랑스. 다른 그 어느 여행지보다도 바게뜨와 크로와상
    그리고 커피가 잘 어울리는 아침이다.
    파리와 바게뜨가 들어가는 빵집 이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빵집 이름과 함께 떠오른 단어는 '간사하다'.
    한국 음식 귀한 곳에서는 마트에서 외국산 라면만 봐도 눈이 돌아가던 것이
    몇 일 한식 푸짐하게 먹었다고 빵과 커피향 나는 아침이 반갑게 여겨지니 말이다.

    라니와 달리 다방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우유와 각설탕으로 농도를 조절해
    최대한 믹스 커피의 맛에 가깝게 조제하는 것에 공을 들였고, 그것마저도 재미로 다가왔다.
    그렇게 프랑스, 니스에서의 첫 아침이 크로와상의 바삭거림과 같이 시작되었다.




     






    속옷과 양발을 빨고 카메라의 사진을 노트북으로 옮긴 후 숙소를 나섰다.
    베네치아 마지막 날의 구름과 비가 같이 따라온 모양이다.
    잔뜩 구름이 내려앉은 가운데 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했다.

    우리에겐 많이 낯선, 기차가 도심의 지하가 아닌 지상에 딱 달라붙어
    별 소음도 내지 않고 다니는 트램을 따라 걸어 내려간 후 만난 바다는
    그런 날씨 때문에 훨씬 덜 이뻐 보였다.

    소문난 휴양지 니스의 바닷가에 서서 파도를 몰고 온
    평소보다 조금 더 쎈 듯한
    바람을 옷깃을 여미며 받았다.
    모래사장이 아닌 자갈밭, 짠내 나지 않는 낯선 바닷가를 잠시 거닐다

    구시가지로 들어섰다.














    꽃시장과 과일시장을 거쳐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혹은 슬픈 이야기가 구석구석 베어져 있을 거 같은
    옛 동네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건물들이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통에 햇빛이 거의 닿지 않을 것 같은 빵집에 들어갔다.
    별로 얹어진 것이 없는 만큼 싼 가격표를 달고 있는 피자 하나를 샀다.
    물이 나오지 않는 분수대에 엉덩이를 걸치고 둘이서 나눠 먹었다.

    얼마 안 되는 양이지만 다 먹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꼭 소금을 토핑한 것 같은 몹시 짠 피자.
    콜라로 혀를 씻어내며 어떻게든 다 먹으려고 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포기해 버렸다.





    다시 걷다 작지만 깔끔한 슈퍼마켓을 발견했다.
    마침 통통하던 치약이 납작해져 가고 있던 터라 하나 살 겸 해서 들어갔다.
    먹을거리도 좀 사려고 했지만 마땅한 것이 없었다.
    유일하게 친숙한 브랜드, 콜게이트 치약만 사고 나왔다.

    조금 더 걸으니 이번에는 큰 마트가 나타났다.
    여기서 치약 살 껄. 이미 늦은 후회를 하면서 면종류가 있는 코너를 찾아갔다.
    온갖 모양의 파스타와 스파게티 면들이 진열되어 있는 선반을 찬찬히 훑어보았지만 라면은 없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스산하게 흐린 이런 날에는 보일러를 적당히 돌린 방에서
    이불을 망토처럼 어깨에 두르고 양은냄비로 끓인 라면과 김치만 올린 소반을
    마주하고 후루룩 거리는 것이 최고인데 하면서 애타게 라면을 찾았지만
    외국산 라면 조차도 없었다.


    과자 몇 개만 주워들고 나가려는데 우산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가져왔던 양산 겸 우산은 명을 다해
    터키의 카파도키아 어느 쓰레기통에 묻어줘 버린지 오래.
    그 동안은 비 오는 날이 그렇게 많지 않아 대충 버텼지만
    이제 하나 마련해야 되지 않을까 해서 살펴보는데
    가격이 참 손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품질은 비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지하철의 3천원짜리 우산만 한 것 같은데 가격은 몇 갑절.
    그 앞에서 우물쭈물 하다 그냥 돌아섰다.
    아테네 민박에서 만난 대학생이 준 이마트 비닐 비옷,
    아직 개시도 안 했는데 그걸로 얼마간은 버텨보자며 과자만 계산하고 나왔다.








    라면도 팔지 않는 마트에서 나온 후에는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에 갔다.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모르는 이런 때는 밖을 나돌아 다니는 것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감상이 나은 선택일테다.
    미술관도 그런 우리를 무료입장으로 반겨주었다.

    현대미술이라 해서 선 몇개 그어놓거나 물감을 아무렇게 찍어 발라 놓고 제목은 '무제'라고 적어 놓는
    그런 초현실적인 작품들로 가득하면 어쩌나 했는데 미술관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팝아트류 전시물을 비롯해
    재활용 예술품들로 가득했다. 거기다 사진도 찍을 수 있어서 아픈 다리 두드려가며 즐겁게 놀았다.



    페트병 밑단과 꼭지로 만든 파란 드레스.





    이런 재치 넘치는 우산꽂이는 어떻게 하면 생각해 낼 수 있을까?


    즐겁게 구경하고 로비로 내려오니 비가 겁나게 쏟아지고 있었다.
    금방 그칠 것 같은 기세가 아니었다.
    로비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 구경하며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렸지만 허사.
    같은 건물에 있는 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웠지만
    -대부분 그렇듯- 이제는 겨우 단어 몇개만이 머리에 남아 있는 라니와 함께
    주로 사진이 많이 들어간 책을 보면서 다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사진만 보며 책장을 넘기니 금방 책 한권이 끝났다.
    입구로 가 보니 여전히 바닥을 적시고 있는 비.
    다시 사진이 많은 책을 골랐다.

    그치기를 기다리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았다.
    빗줄기가 약해진 틈을 타 도서관을 나왔다.
    옷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 쓰고 종종걸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금새 엄지와 둘째 발가락에만 줄을 끼워 신는 슬리퍼가 젖어들었다.





    숙소에서 시간을 보내고 8시가 넘어 다시 나섰다.
    숙소 주변을 배회하며 저녁식사를 해결할 곳을 찾았다.
    한국에서도 어중간할 때 만만하게 찾는 중국집이 여기에도 있었다.
    물론 자장면, 짬뽕은 없지만 그래도 일단 심리적으로 포근하다.
    유일한 손님이 되어 볶음밥과 돼지고기국수를 먹었다.

    돌아가는 발걸음에 걸리적 거리는 찬바람이 가슴 속까지 타고 들어왔다.
    날씨 탓인지 기분도 자꾸 가라 앉고 신이 나질 않는다.
    뜨끈한 온돌방이 그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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