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노묘일기] 토요일 밤, 갑작스런 상처
    고양이/쿠키와지니 2023. 1. 8. 10:09
    반응형

    2003년생 할머니 고양이 지니. 어느새 19살이 되고 그리고 또 반년이 지났다. 나이가 무색할 만큼의 정정함에 하루하루 탄복하고 감사해하며 지내고 있다. 그런데 너무 평화롭기만은 할 수 없는 게 인생이고 묘생이니 마음고생, 몸 고생을 한번 겪게 되었다. 

     

    2023년 11월26일 토요일

     

    전날 오른쪽 눈 위에 뾰루지 같은 것이 난 걸 발견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자연스레 가라앉길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런데 저녁 식사 준비하다 그 부분이 빨갛게 변해 있는 걸 발견했다. 놀라서 가까이 가 살펴보니 상처가 크게 났고 피가 배어 나와 있었다. 아마도 그 뾰루지가 터진 것 같았다. 발로 얼굴을 긁는데 발톱에 걸린 걸까? 

     

    일단 상처를 더이상 긁지 않도록 넥카라를 둘러야 했다. 예전에 쓰던 걸 찾았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토요일 밤의 시골, 넥카라를 구입할 수 있는 곳은 근처에 없다. 제주시내에 있는 동물병원 중 주말 진료하는 곳을 찾아봤다. 노형오거리에 있는 동물병원, 진료시간이 8시까지였다. 차를 타고 1시간은 가야 하는데 헛걸음하면 큰일이니 전화로 재차 확인했다. 8시까지 도착하면 진료를 볼 수 있다고 했다. 6시50분이 다 되어 가는 상황. 준비하던 저녁식사는 내팽개치고 캐리어 꺼내 지니를 넣고 서둘러 제주시내로 향했다. 

     

    다행히 길은 많이 막히지 않아 제때 병원에 도착했고 진료를 볼 수 있었다. 평소 이렇게 긴 시간 차를 탈 일이 없었던 지니, 혹시나 멀미를 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무사히 온 것도 다행이었다. 앞 진료가 꽤 시간이 걸렸고 먼저 와 기다리고 있는 강아지도 있어서 대기 시간이 길어졌지만 힘들지는 않았다. 토요일 밤에 진료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기 때문에.

     

    한참만에 진료실에 들어갔다. 캐리어 문을 열어 지니를 진정시키고 있는 동안 여 수의사분도 진료실에 들어섰다. 세심하고 배려의 마음이 담긴 말과 손길로 진료를 했다. 나이가 나이다 보니 주사나 약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일단 소독해 주고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혹시 곰팡이균 때문일 수도 있으니 털을 조금 뽑아보자고 했다. 그것이 원인이라면 털이 쉽게 뽑힐 거라고 했는데 그냥 쑥 빠졌다. 원래 예전부터 눈 위쪽에는 털이 적은 편이긴 했었다. 쉽게 뽑히는 것만으로는 단정 지을 수 없으니 배양을 해 보기로 했다. 배양에는 여러 날이 걸릴 것이고 결과가 나오면 연락을 주겠다 했다.

     

    진료를 마치고 나오면서, 주말 늦은 시간까지 진료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의사분께 전했다. 소독약을 받고 플라스틱으로 된 얇은 넥카라를 하나 구입하고 진료비를 계산했다. 진료비는 주말에 야간 진료여서 많이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예상 보다는 적게 나왔다. 진료비 11,000원, 곰팡이 배양 검사비 22,000원. 

     

    나이 많은 할머니 고양이이다 보니 작은 상처에도 마음을 졸이게 되고 아직 기다림의 시간이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뒤늦게 찾아오는 허기를 달래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관건은 상처를 긁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상처가 거슬려 긁을 수도 있고 딱지가 생기면서 간지러워 긁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넥카라를 사용하면 되는데 사람은 편하지만 고양이는 불편하니까 문제다. 식사, 배변, 그루밍 등 모든 행동에 불편이 따르는데 그걸 보고 있는 것이 너무 힘든 우리의 마음이 또 문제다. 예전에 꼬리에 상처가 생겼을 때에도 둘이서 잠을 교대로 자면서 지니 옆에 붙어 카라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도록 해 주느라 힘든 시간을 보냈었었다. 당분간은 또 고난의 시간이겠구나 걱정을 하며 새로 산 카라 적응을 위해 카라를 씌워줬다.

     

     

    11월28일 월요일

     

    곰팡이 배양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해서 믿고 기대는 한수풀동물병원에 다녀오기로 했다. 월요일 오전 진료 시작하자마자 전화해서 바로 진료가능한지 문의-가끔 수술 등으로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 괜찮다는 답을 받고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선생님은 여느 때와 같이 친절하고 상세하게 잘 설명을 해 주셨다. 토요일에 갔던 시내의 동물병원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많기 때문에 적극적인 치료 보다는 일단 두고 보기로 했다.

     

     

    11월29일 화요일

    며칠 동안 넥카라 풀어놓을 때 유심히 살펴보니 다행히 상처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굳이 카라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생각보다 빨리 카라로부터 지니도 우리도 해방되어서 다행이었다. 

     

     

    12월8일 목요일

    동물병원으로부터 곰팡이 배양 검사 결과를 알려주는 전화가 왔다. 다행히 음성. 

     

     

    12월18일 일요일

    나이가 나이인 만큼 상처는 더디게 아물어갔다. 20여 일이 지난날 딱지가 떨어진 걸 발견했다. 혹시나 상처의 원인이 심각한 것이거나 상처가 악화되거나 할까 봐 걱정이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2022년이 끝나갈 무렵 새살에 털도 잘 자라나 완전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평화롭게 새해를 맞게 되었다. 새해에는 아무런 탈 없이 다시 넥카라 쓰는 일 없이 건강히 보내길 바라본다.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