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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따라 세계여행::261일]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 세째 날
    세계여행/남미 2010 2011. 9. 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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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0 . 0 1 . 1 9 . 화 |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또레스 델 빠이네) Chile Torres del Paine


    오늘은 일정에 여유가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피곤이 누적되다보니 힘들어 모두가 늦잠을 잤다.
    아침 먹고 씻고 텐트를 걷으려는데 시계를 보니 어느새 11시.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급하게 배낭에 커버를 씌웠다. 괜히 조바심이 더 난다.
    해 나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 비만이라도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출발했다.



    지도 출처, torres-del-paine.org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 세째 날.
    쿠에르노(Cuernos) 캠핑장을 떠나 칠레노(Chileno) 캠핑장을 지나 토레스(Torres) 캠핑장까지 간다.
    계속 그랬지만 오늘도 만만치 않은 거리다.









    출발한지 2시간 45분이 흘렀다.

    라니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꿋꿋하게 걸었지만 동생들과의 간격은 자꾸만 늘어났다.
    신경쓰지 말고 본인들의 속도대로 걸어나가라고 미리 일러두었던 동생들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바람소리만이 존재하는 망망대해 같은 길에 우리만 있었다.
    발걸음을 내디딜때마다 흙길에서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만이 우리가 걷고 있음을 알려줬다.

    어느 순간부터는 왜 걷는지도 잊은 채 그저 묵묵히 걷기만 했다.
    내리막길이 나타나면 잠시 기뻐하고 그것도 잠시 오르막길에 절망하며 걸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깨와 다리, 발의 고통은 점점 더해갔다.

    풍경은 시시각각 변하지만, 우리가 옮기는 발걸음마다 변하지만
    젖어드는 감상의 크기는 점점 줄어들었다.

    우리는 왜 여기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걸까?



    갈림길이 나타났다.
    남미 대륙 끄트머리에서도 선택의 순간은 따라 다닌다.
    점심을 같이 먹어야 하는데 이 길에서 어긋나면 대략 아니 완전 난감이다.

    지도를 보며 곰곰히 생각했다.
    텔레파시를 받지는 않았지만 분명 왼쪽 길일것 같았다.
    순간의 선택이 점심을 좌우하는 순간이었다.

    왼쪽 길로 접어 들어 얼마를 걸었을까?
    저 멀리서 준형이 양팔을 번쩍 들어 흔드는 것이 보였다.
    반갑고 고마웠다. 우리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밥 먹고 떠났을텐데..



    삼일째 똑같은 샌드위치를 점심으로 먹었다.
    물릴법도 하지만 각오를 하고 왔고 선택의 여지가 없으므로 그런대로 들어간다.

    저기 2천미터가 넘는 높다란 봉우리에 쌓인 눈이 녹아
    내려왔을 맑은 계곡물을 생수병에 담았다.
    그리고 과일맛 가루를 넣고 마구 흔들었다.
    한 모금 마시자 어릴 때 유원지에서 팔던 싸구려 주스맛이 떠올랐다.

    3박4일동안 과일을 들고 다닐수도 없고
    과일을 살 수 있는 곳은 당연히 없고
    물만으로도 충분히 무거운데 거기다 주스까지 
    배낭에 넣고 다니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고,
    그래서 생각해낸 고육지책, 가루 주스.
    인공적인 맛이 너무 강하지만 그래도 잘 가져온 것 같다.









    늦은 점심을 먹은 후부터는 완만하지만 오르막이 계속 이어졌다.
    숨이 있는대로 거칠어졌다. 그리고 길다란 계곡이 나타났다.
    이제부터는 한동안 내리막. 정점에 서서 숨을 고르며 잠시 배낭을 내렸다.

    어제는 동생들이 메고 다녔던 텐트 중 하나를 오늘 넘겨받았다.
    배낭 윗쪽에 묵어 메고 오다가 어깨가 불편해 손에 들고 걸었다.
    그렇게 텐트를 빼고 내 배낭과 라니의 배낭을 비교해 보니 내 것이 조금 더 가벼웠다.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배낭을 바꿔멨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 코스는 우리에게 너무 무리인걸까?
    우리의 목적은 걷는 것이 아니라 대자연을 만끽하는 것인데
    지금 이 순간은 오로지 이 걷기가 어서 끝나기를 바랄만큼 힘들기만 하다.

    한숨 돌리며 쉴 때마다 감상에 젖기는 하지만
    많은 시간을 걷고 그 걷기 동안에는 힘든 느낌들이 온몸을 지배하니 주객이 바뀐 듯해 안타깝다.

     



    칠레노 산장. 다 같이 제법 쉬었다가 최종 목적지 토레스 캠핑장을 향해 다시 출발.











    쿠에르노 캠핑장을 떠난지 장장 8시간만에
    토레스 델 파이네의 마지막 밤을 보낼 토레스 캠핑장에 도착했다.

    말이 캠핑장이지 오두막 수준의 관리사무소 하나와 화장실 하나가 전부다.
    (그래서 지난 두 밤을 보낸 캠핑장들과는 달리 무료.)
    캠핑장을 관통해 흐르는 얼음장 같은 물을 받아서 라면을 끓이고 
    소름 돋는 차가움을 참아가며 그 물에 지친 얼굴을 씻었다.

    어제는 준형의 통조림 깻잎과 상학의 즉석미역국으로 하루의 고단함을 풀었고
    오늘은 우리가 가져온 너구리로 지친 입맛을 돋구었다.

    오늘 소비한 체력을 보충하기엔 부족한 라면이지만
    뜨끈한 라면 국물을 품으니 마음이 푸근해진다.
    텐트에서 나와 힘껏 숨을 들이켰다.
    욕이 나올 뻔 할만큼 힘들었던 걷기에 대한 억한 심정도 제법 누그러들었다.

    이 고생도 나중에는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겠지 생각하며
    내일 마지막 트레킹을 위해 일찍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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