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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따라 세계여행::170일] 누렁이와 함께 한 오롱고 가는 길
    세계여행/남미 2009 2011. 2. 1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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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9 . 1 0 . 2 0 . 화 | 칠레 이스터섬 Chile Easter Island


    길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암튼 점심 먹고 나서 걷기 시작했다가
    잠시 멈췄던 그 길을 다시 걷기로 했다.
    10번까지 걸었었는데 다른 길로 접근했더니 13번 안내판이 나왔다.
    정말 간략한 지도에 표시된 화살표를 보니 가운데쯤 되는 위친가 보다.
    마을 중심가를 벗어나 꽤 걸어왔는데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








    한참을 더 걷고 난 후 화살표가 그려진 표지판이 하나 나타났다.
    오롱고(Orongo)는 어제 갔었던 분화구 옆의 유적지.
    Sendero가 무엇을 뜻하는 단어인지 모르겠지만 
    화살표와 더불어 '오롱고로 가는 길'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길도 나 있지 않은 수풀이 잠시 주춤거리게 했다.
    그렇게 망설이고 있을 때 동네 개 두어마리가 나타났다. 
    조심스럽게 수풀 속으로 들어가려는데 그 중 누렁이가 따라왔다.

    다행히 수풀은 잠시여서 안심했지만 길 안내는 부실했다.
    바닥에 풀이 자라지 않은 채 산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누렁이도 계속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함께 걸었다.
     







    조금 얼쩡거리다 떨어질 줄 알았던 누렁이는 계속 따라왔다.
    간식으로 줄 만한 것도 없다고 너네 집으로 돌아가라고 얘기도 하고
    손짓 발짓으로 위협도 했지만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무슨 심보인지 알 수 없지만
    굳이 같이 가겠다면 말리지 않기로 했다.






    어느새 18번까지 왔다.
    스페인어를 모르지만 영어와 비슷한 단어들을 보면서 그 뜻을 점쳐봤다.

    Observacion, Observation이 아닐까?
    Geologica, Geologic일까?

    Vista는 낯설지 않다. 지금 쓰고 있는 노트북에 윈도 비스타가 깔려 있다. 
    물론 원래 뜻이 풍경, 전망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Panoramica는 Panorama가 분명할 것이다.
    Hanga Roa는 마을 이름이니 항가로아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그 정도의 뜻이 되나 보다.

    제대로 맞춘 것인지 뒤돌아보니 작은 마을,
    섬의 유일한 마을 항가로아가 바다와 함께 한 눈에 들어왔다.






    또 다시 고민에 빠졌다. 
    해가 지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았긴 하지만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하기도 어렵고 
    돌아가는 것도 생각해야 하니 계속 올라가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는 것도 아깝고.

    상의 끝에 고민은 접고 조금 더 서두르기로 했다.






    약도상에는 정말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누렁이 녀석도 힘든가 보다.
    그러게 도대체 여기까지 왜 따라왔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돌아가는게 어때?
    너 없어도 우린 잘 찾아갈 수 있다구.








    구름이 바다에 닿을 듯 낮게 드리워졌다.
    얼마나 내려앉았는지 바다는 또 얼마나 잔잔한지
    수면에 구름이 담겨져 바다 같지가 않았다.






    바다를 보며 가뿐 숨을 죽이고 돌아서 계속 올라가려는데
    누렁이가 갑자기 뛰더니 앞장 서 나갔다.

    가다가 서서 뒤돌아 보고 가다가 또 돌아서서 쳐다보기를 반복했다.
    마치 다 왔으니 더 힘을 내라는 듯이.
    입은 다 물고 있었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클릭하면 큰 사진.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올라온 보람이 있다.

    어제는 안개가 잔뜩 끼여 있어서 전체를 다 볼 수 없고 발 아래치만 겨우 봤었다.
    오늘은 너무 말끔하다.

    건너편에 벽이 낮은 곳 너머로는 바다가 보였다.

    만들어질 당시에는 엄청나게 뜨거웠을 화산,
    이제는 불 대신 물이 채워지고 하늘까지 담고 있는 호수,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고 있는 바다.

    이 오묘한 조합에 잠시 빠져들었다.















    해가 지고 있다. 
    어두워지기 전에 산에서 내려가고 마을까지 돌아가야 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누렁이도 쳐지지 않고 뒤따라 내려왔다.

    그런데 만났던 곳에 도착했는데도 떠나가질 않았다.
    계속 따라왔다. 마을까지 쫓아왔다.
    숙소 근처에서 다른 개들을 만나고서야 헤어졌다.

    쉼 없이 걸어 많이 아프고 지친 다리를 토닥이며 서로 궁금해 했다.
    도대체 누렁이의 정체는 뭘까?

    내려오는 길에 들판에 풀어져 있는 소떼와 
    오두막을 지키고 있는 개들을 흥분시켜 
    당황스럽게 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녀석 덕에 조금 더 즐겁게 다녀왔다.








    어제의 석양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아픈 다리를 이끌고 
    어제의 그 곳에 다시 나갔다.
    하지만, 두꺼운 구름이 너무 낮게 내려앉아 
    어제와 같은 황홀한 풍경은 펼쳐지지 않았다.


    이스터섬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는 조금 근사하게 할까 해서
    숙소 근처의 레스토랑을 찾았지만 문이 닫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 도착한 프랑스사람과 콜롬비아사람이 좁은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 틈바구니에서 밥을 짓고 미역국을 끓였다.

    내일 이스터섬을 떠나는 것이 아쉽지만
    오늘 분화구에 다녀온 것이 제법 큰 뿌듯함을 안겨주어 
    아쉬움의 많은 부분을 덜어낼 수 있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길이지만 왠지 우리만의 비밀스런 길을 다녀온 기분이다.
    (오늘만 그런 것인지 다녀오는 길에 정말 아무도 없었다.)
    모아이의 비밀과 맞물려 끝까지 신비롭게 마음에 남는 이스터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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