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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따라 세계여행 :: 40일] 잔지바르에서의 잔재미 - 헤나와 머리땋기
    세계여행/아프리카 2009 2009. 12. 1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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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스러운 원장과 수줍음 많은 과묵한 여직원 둘이서 꾸려나가는 동네 작은 미용실.
    문이 열려져 있지 않다면, 아마도 원장이 직접 만들었을 것 같은 촌시런 간판이 세워져 있지 않다면
    미용실인 줄도 모르고 지나쳐 버릴 소박한 그 곳에서 라니는 팔에 헤나를 그려 넣고 머리를 땋았다.

    스케치를 해 놓은 노트에서 문양을 선택하니 영어는 못하고 스와힐리어만 하는 미용사는
    아무 말 없이 물감으로 헤나를 슥슥 그려 나갔다. 비록 섬마을 한구석에서 자신의 실력을 썩히고 있는 그런
    재주꾼의 솜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밑그림도 없이 지우개로 지울 수도 없는 물감으로 문양을 그려나가는
    모습은 우리에게 신기하게 보였다.

    헤나가 완성된 후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머리를 땋았다.
    부담스러운 스타일들로 가득찬 샘플중에 그나마 무난한 공주머리를 선택.
    (왜 그 스타일이 공주머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머리가 아직 짧아 가발을 함께 엮어 땋아 나갔다. 머리 땋을 때도 말없기는 마찬가지.

    미용사가 머리를 땋는 동안 라니는 아직 땋지 않은 머리를 잡고 있었다. 한줄이 완성되면 생머리를 잡고 있는
    라니의 손을 톡톡쳤다. 그러면 라니는 머리를 놓아주고 미용사는 한줄 땋을만큼의 머리만 잡아가고
    나머지는 라니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2시간여만에 많이 달라진 모습으로 미용실 문을 나섰다.
    공주머리를 해도 공주가 될 순 없었지만, 몸으로 느낀 잔지바르에서의 재미는 여운이 오래갈 듯 하다.


    + 머리땋기 25,000실링(약 24,600원) + 헤나 5,000실링(약4,900원)





























    숙소로 돌아온 후 가방을 열었는데 노트북이 보이질 않았다. 지퍼를 모두 열고 뒤집어 탈탈 털었지만,
    잡동사니만 쏟아져 나왔다. 갑자기 맥박수가 급속도로 증가했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리고는 뛰쳐나갔다. 뜀박질에는 최악인 쪼리를 신은 채로 스톤타운의 골목길을 내달렸다.
     
    어제 오늘 돌아다니면서 거의 다 익힌 미로 같은 골목길이었지만 마음이 급하니 헛갈릴 수밖에 없었다.
    지나친 길을 되돌아가고 골목이 교차되는 곳에서 우왕자왕하니 앉아있던 마을아저씨들이 웃어댔다.
    하지만, '너도 길 잃었구나.. 여기 오는 관광객들은 다 그래..' 라고 하며 웃는 듯한 그들에게 답미소를
    날려줄 그럴 여유가 없었다. 길을 제대로 찾아서는 다시 달렸다.

    노트북이 있을 곳은 라니가 머리땋는 동안 있었던 피씨방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 노트북이 없어도 할말이 없었다. 나라도 인터넷하러 피씨방에 갔는데 내앞에 작은 노트북이
    날 데려가쇼 하고 얌전히 놓여져 있다면 일단은 군침을 삼킬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알바생이 챙겨놓고 본 적 없다해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마지막 손님이었기를, 그래서 알바생은 후덥지근한 날씨에 몰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책상에 업드려
    내내 졸았기를 바랬다. 뛰어가는동안 정신나간 사람처럼 '제발,제발'을 되내였다.

    마침내 피씨방에 당도. 손님은 없었지만, 여알바생은 전혀 피곤한 기색없이 숨이 턱에까지 차 헐떡거리는 나를
    미소로 반기고 있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듯이.. 물론 내가 앉았던 자리에 노트북은 없었다.
    색색거리며 저기 올려져 있던 노트북 보지 못했냐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알바생은 서랍을 열었고,
    책상에 노트북을 올려놓았다.

    여행시작한지 한달여만에 노트북 잃어버리고 몇일동안 그 휴유증에 시달리며 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 고맙고 또 고마웠다. 땡큐베리머취를 연발했다. 하지만 그녀는 왜 그렇게 놀라냐는 눈치였다.
    비록 지금까지 알고 지내왔던 새하얀 천사와는 다른 색이었지만, 정말 이 세상에 천사가 존재하는구나 싶었다.

    무엇으로라도 보답을 하고 싶었지만, 급하게 뛰쳐나와 가진게 아무것도 없었다.
    고마움에 미안함을 얹힌 채 내 다시 오겠노라는 말을 뒤로 하고 피씨방을 나섰다.


    사건의 진상은 이러했다. 라니의 머리땋기가 완성되는데는 한시간정도가 걸린다고 했고 나는 피씨방에 다녀
    오기로 했다. 하지만, 느려터진 인터넷과 씨름하는 사이 시간은 금방 흘렀고 길도 잘 모르는 아이를 혼자 떨궈놓고
    온 나는 마음이 급했고 노트북 전원선만 부랴부랴 챙기고 피씨방을 떠나떤 것.
    아무리 급해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미스테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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