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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따라 세계여행::262일]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 마지막 날
    세계여행/남미 2010 2011. 9. 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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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 출처, torres-del-paine.org


    1 0 . 0 1 . 2 0 . 수 |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또레스 델 파이네) -> 푼타 아레나스(뿐따 아레나스)
    1 0 . 0 1 . 2 0 . 수 | Chile Torres del Paine -> Puerto Natales -> Punta Arenas


    새벽 5시 40분.
    여전히 어둠이 지배하고 있는 숲속에 손목시계의 가녀린 알람소리가 울렸다.
    자는 둥 마는 둥 했던 잠에서 깨어났다. 정적을 깨는 바스락소리를 내며 침낭에서 나왔다.
    세개의 뾰족한 돌덩어리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토레스 봉에 올라가기 위해 나섰다.

    오늘, 푸에르토 나탈레스(뿌에르또 나딸레스 Puerto Natales)에서
    자는 일정이면 조금 더 여유롭게 움직여도 될 터였다.
    하지만 동생들 중 한 명이 내일 푼타 아레나스에서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야했다.
    어짜피 내일이면 헤어질 것, 그 동생 혼자 움직여도 될 일이었지만
    짧은 시간동안 깊이 든 정 때문에 다 같이 푼타 아레나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래서 어두컴컴한 그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길은 꽤 험했다.
    경사가 많이 진 길은 발목이 아프고 불편한 대여 등산화를 신은 라니를 더욱 힘들게 했다.
    동생들은 진작에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라니는 자기 걱정하지 말고 먼저 가라고 했다.

    뒷 일정은 정해져 있고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정확하게 예상하기는 힘드니 고민이 많았다.
    먼저 올라가 기다리자니 라니가 걸리고 같이 오르자니 너무 지체될 것 같고...
    지금 라니의 상태와 걷는 속도로는 정상까지 얼마나 걸릴지 끝까지 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일단 나라도 먼저 도착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을 내리고 속도를 내었다.



    마음이 급해서인지 가도 가도 나오지 않는 목적지는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거기다 계속 경사가 급한 길이 이어져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라니에겐 무리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의 간격은 너무 벌어졌다.
    라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큰 소리로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또 갈등이 일었다. 언제 나타날지 알 수 없는 라니를 기다리자니 마음이 급하고
    힘들게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갈 엄두는 또 나지 않았다.

    주저 앉아 가쁜 숨을 고르며 고민을 잠시 하다, 결국엔 일어나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 후 큰 바위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는 길로 이어졌다. 아니, 길은 없었다.
    내 작은 발걸음에 바위가 무너져 내리지는 않겠지만 너무 위태롭게 보였다.
    조심스럽게 때론 엉거주춤 손을 짚어가며 겨우 지나갔다.
    다시 길이 이어졌지만 낭떠러지를 옆에 둔 좁은 비탈길이었다.



    아래를 보니 2개의 스틱에 몸을 의지하며 힘겹게 경사진 길을 오르는 라니가 보였다.
    마침 내가 있는 위 쪽을 쳐다 보길래 가지고 있는 손전등으로 'X'자를 그리며 내려가라고 손짓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방금 지나온 바위 언덕은 발목에 더 무리를 줄 것 같았다.
    느린 걸음으로 내려가는데 걸리는 시간도 고려해야했다.

    거기까지 얼마나 힘들게 올라왔는데...
    중도에 뒤돌아 보내야 하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라니는 내 손짓을 알아들었는지 발길을 반대방향으로 돌렸다.

    잠시 서서 뒤돌아 내려가는 아쉬운 발걸음을 바라봤다.
    라니를 위해서라도 더 힘을 내야할 것 같았다.
    힘차게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 왼쪽으로 꺾으니 엄청난 풍경이 나타났다.
    세개의 봉우리가 구름에 가린 채 신비롭고도 웅장하게 서 있었다.
    거기가 바로 오늘의 목적지, 이번 트레킹의 마지막 목적지, 토레스 봉이었다.



    기쁨과 동시에 미안하고도 안타까운 마음이 가슴을 치고 들어왔다.
    거의 다 왔는데 괜히 라니를 돌려보낸 것일까?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기다려야 했을까?
    그동안의 고생을 씻어주는 것 같은 이 장관을
    혼자서 즐기는 것이 사뭇치게 안타깝고 미안했다.
    혼자 보기엔 너무나 멋진 장면이었고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장면이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뒤돌아 되짚어 보면 아쉬울 때가 있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다.



    클릭하면 큰 사진.



    라니는 아쉬워하면서도 괜찮다고 나를 다독여주었지만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라면을 아침으로 끓여먹고 텐트를 정리하는데
    비마저 내려 울적한 마음은 더 짙어졌다.

    지나가는 비가 아니었다.
    어느새 더 굵어진 빗방울은 어깨를 더욱 무겁게 했다.
    길은 질퍽해져 내리막이 이어지는 길에서 조심스럽게 다음 발을 내딛어야 했다.

    계곡물은 많이 불어나 있었다.
    돌다리의 몇 개는 물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하나 남아 있는 돌로 폴짝 뛰어 겨우 건넜다.
    어느 개울에서는 돌다리가 완전히 사라질 정도로 물이 많이 불어나 있었다.
    어느 부분에서는 결국 강에 발을 담그고 부축을 해주면서 건너야했다.




    칠레노 산장(Refugio Chileno)에 도착할 때까지 얼마나 비가 굵게 내리는지
    방수가 된다는 옷도 배낭커버도 아무 소용이 없을 정도였다.
    그야말고 홀딱 젖었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갈길이 멀었다는 것.
    그리고 당분간은 오르막길이 이어진다는 것.
    눈 앞에 놓인 길을 보는데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길다란 계곡을 따라 난 길.
    올 때는 내리막이었지만 다시 돌아갈 때는 오르막이 되는 길을 힘겹게 걸어 올랐다.
    그리고 정점을 찍고 다시 내리막길이 시작될 무렵부터 비가 줄기 시작했고 날씨도 점차 좋아졌다.

    조금 더 빨리 비가 그쳤으면 좋았을텐데,
    이제부터라도 비가 그친게 어디야,
    마음이 교차했다.

    물에 흠뻑 젖은 신발속에서 발이 질퍽거리지만
    국립공원 입구로 나가는 버스를 기다릴 토레스 호텔(Hosteria Las Torres)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서 마음도 맑아졌다.

    배낭에서 갈아입을 옷을 찾았다.
    비가 많이 내린 탓에 배낭 안까지 젖어들었다.
    다행히 못 입을 정도로 옷이 젖지는 않아 꺼내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옷을 갈아입고 3박 4일간의 트레킹도 드디어 끝이 났다.
    시작할 때만 해도 막막했던 토레스 델 파이네의 트레킹이 드디어 끝났다.




    대자연 속에서 야생스럽게 보내며 스스로의 한계를 찾아본 점은 뿌듯했다.
    하지만 3박4일 동안 캠핑을 하며 걷는 W코스는 확실히 우리에겐 벅찬 일정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온전히 즐기고 감상하는 것보다 걷는 것 자체에 더 많은 에너지가 사용된 건 아쉬웠다.

    혹 다음에 다른 곳에서 또 트레킹을 하게 된다면
    좀 더 잘 알아보고 공부해서 우리에게 맞는 경로, 적당히 힘들면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일정으로 가야겠다.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돌아와 맡겨둔 짐 찾아 배낭정리.
    .장비, 옷, 신발 등 반납.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온 첫 날, 처음 간 식당에서 저녁식사.


    저녁 8시 버스를 타고 푼타 아레나스로 향했다.
    이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남미 대륙의 끄트머리다.

    캄캄한 밤, 인적 드문 거리의 푼타 아레나에서 숙소 찾기는 쉽지 않았다.
    몇군데를 전전하다 더 늦어지면 곤란할 것 같아 배낭을 내리고
    나와 스페인어가 되는 준형, 둘이서만 숙소 탐문에 나섰다.

    처음으로 찾은 A호스텔, 다섯명이 묵을 수 있었지만 
    도미토리가 벽이 아닌 커텐으로 구분되어 있고 담배냄새도
    제법 나 일단 나와서 다른 곳을 찾아봤다.

    하지만 역시 자리가 없거나 혹은 너무 비쌌다.
    연정,상학,라니가 기다리고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
    그 A호스텔쪽으로 가서 다른 곳을 조금 더 찾아보고
    정 안 되면 그  A호스텔에서 하룻밤만 자기로 했다.

    그런데 그 곳으로 이동하자마자 조금 전에는 보지 못한 한 호스텔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하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찾아갔는데 자리가 있다는 반가운 대답을 받았다.



    방도 깔끔하고 침대와 침구도 깨끗했다.
    무엇보다 다른 손님 없이 온전히 우리들만의 방이어서 기쁨 두 배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신생숙소였다.)

    침대에 털썩 주저 앉고 보니 어느새 자정이 넘어 있었다.
    새벽 5시부터 시작된 길고 긴 하루가 끝이 났다.
    힘들었지만 딱딱하고 울퉁불퉁하고 기울어진 땅바닥이 아닌
    폭신한 침대에 누우니 다 용서가 되는 기분이다.
    그리웠던 단잠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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