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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따라 세계여행::259일]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 첫째 날
    세계여행/남미 2010 2011. 9. 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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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0 . 0 1 . 1 7 . 일 |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또레스 델 빠이네) Chile Torres del Paine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남미 대륙의 남단, 안데스 산맥의 끝자락에 펼쳐진 대자연 속에서의 3박 4일 트레킹.

    이런 건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제작할 때나 찍는 줄 알았지 우리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걷는 걸 좋아하고 지난 8개월동안 참 많이 걸었다.
    한국에서는 감히 걸어서 다니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거리도 걸어서 다니곤 했다.

    하지만 대부분 하루 안에 마감되는 걷기였다.
    아무리 많이 걸어도 저녁에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지붕이 있는 건물에서 때론 부족함 많은 침대라 할지라도
    이불 덮고 편하게 자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여행 초반 아프리카에서 캠핑을 하며 다녔지만
    그건 차에 텐트 싣고 다니고 요리사가 밥 해주는 투어였다.

    생애 최초의 텐트와 먹을거리 모두 짊어지고 무려 3박 4일 걷기.
    많이 지치고 힘들겠지만 그 이상의 기쁨과 만족과 성취감과 보람이 있을거라 믿으며 시작한다.



    국립공원으로 가는 버스.


    무지개가 희망을 듬뿍 심어준다.


    드디어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입구.


    국립공원 사무소의 일기예보. 우리의 트레킹 3박4일동안 하루 빼고 비온단다. 낭패다.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 첫번째 캠핑장으로 향했다.


    캠핑비 내고 적당한 자리에 일단 텐트부터 치고 빵에 버터와 카라멜 바르고 치즈와 햄 넣어 만든 샌드위치로 점심.
    (캠핑비 1인당 4,500페소 / 약 10,500원)



    지도 출처, torres-del-paine.org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의 트레킹 코스는 사실 걷는 사람 마음이다.
    하루만 걸어도 되고 여러날 걸어도 되고.
    이쪽부터 걸어도 되고 저쪽부터 걸어도 되고.
    일부는 빼 먹어도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코스가 있는 듯 했다.
    우리는 일명 W코스를 걷기로했다.
    높다란 산봉우리 주변을 비잉 한바퀴 도는 순환코스도 있지만
    그건 최소 1주일 이상 걸리는 말그대로 대장정.



    걷는 길의 경로가 W모양이다.
    1일. 파이네 그란데 캠핑장(Refugio Paine Grande)에서 텐트 치고 그레이빙하고 보고 오기.
    2일. 이탈리아노 캠핑장(Refugio Italiano)에 배낭 내려놓고 프란세스 계곡 다녀온 후
    2일. 쿠에르노 캠핑장(Refugio Cuernos)까지 걷기.
    3일. 토레스 캠핑장(Refugio Las Torres)까지 걷기.
    4일. 토레스봉에 다녀온 후 하산.




    텐트 치고 간단하게나마 배를 채운 후 드디어 첫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그레이빙하를 보고 오는 코스.
    거리는 11km, 소요시간은 3시간 반, 난이도는 중.
    우리는 캠핑장으로 되돌아와야하므로 22km를 걸어야하고 7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22km. 7시간. 아직까지는 실감이 나지 않는 수치다.
    그냥 막연히 힘들 것이라는 느낌만 있다.
    그나마 난이도가 상이 아니라 중이라는 것에서 위안을 얻는다.



    구름에 가린 위용.









    드디어 유빙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일의 우리의 모습. 대단해 보였다.


    저 멀리 빙하가 모습을 드러냈다.

     



    캠핑장을 떠난지 두시간여만에 전망대에 도착했다.
    잠깐만 방심했다가는 남극까지 날아가버릴지도 모를 정도로
    바람이 심하게 불었지만 장대한 풍경을 앞에 두고 있음에 그마저도 좋았다.

    캠핑장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면 발걸음이 점점 더 무거워지지만
    빙하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다시 힘차게 출발했다.







    바람에 꺾일 듯 휜 나무, 더없이 푸르른 나무, 하얀 눈이 쌓인 봉우리,
    빙하가 녹은 물이 모인 호수, 산을 가르고 내려오는 계곡.
    다양한 자연을 모습을 만끽하며 점점 무거워져 가는 발을 열심히 옮겨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르헨티나의 모레노 빙하에 이어 두번째 보는 빙하.
    그 때보다 빙하는 더 멀리에 있었지만 거기서 떨어져 나온 빙하의 조각들은 더 가까이에 있었다.
    북극곰처럼 폴짝 뛰면 올라갈 수 있을만큼 가까이까지 흘러와 있었다.

    여전히 많이 부는 바람을 이겨내며 하염없이 바라봤다.
    카메라로 눈으로 마음으로, 잊고 싶지 않은 풍경들을 담았다.



    사막을, 초원의 사자를, 피라미드를, 모아이를, 마추픽추를
    처음 보았을 때의 그 감정이 또 다시 느껴진다.
    단순히 벅차고 감동적이다, 희열, 환희 등등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

    때론 힘들었고 또 그리웠고 그래서 여행이고 뭐고
    때려치우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때도 있었던 여행이지만
    그래도 잘 떠나왔다 싶다라고 느끼게 하는 감정.

    앞으로 살아갈 나머지 삶에서도, 삶에 대해서도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생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기쁨도 잠시.
    이제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한다는 생각에 아킬레스건이 찌릿찌릿하다.
    빙하를 보고 돌아나와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 쓰러져 있던 고목을 의자 삼아 앉았다. 
    숨을 고르고 다시 출발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20대의 동생들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염려했던 라니의 발목이 문제다. 피츠 로이(Pitz Roy)의 트레킹에서 접지른 그 발목.
    거기다 대여점에서 빌린 등산화도 문제를 키웠다.
    빌릴 때는 발에 맞는 것 같았는데 걸을수록 불편해했다.
    대단히 좋은 등산화도 아닌데다 늘 신어왔던 신발도 아니어서 그럴 수 밖에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점점 멀어지다 사라졌지만 중간중간 쉬면서 우리를 기다려주는
    동생들의 격려를 받으며 느리지만 묵묵히 걸어나갔다.









    드디어 떠날 때 보았던 트레킹 경로 안내판이 나타났다.
    그리고 이내 산장도 눈에 들어왔다.
    비록 우리는 텐트에서 자야하고 그래서 우리와는 상관없는 산장이지만
    그레이빙하를 마주했을 때만큼이나 기뻤다.

    빨리 걸을 수 없었지만 안내판의 예상시간에서 많이 늦지않게 트레킹을 마쳤다.
    그 먼 거리를 걸어내어 빙하를 보고 토레스 델 파이네를 맛 보았다는 성취감과 함께
    고단함, 그리고 허기가 찾아왔다.

    텐트에 드러누우면 못 일어날 것 같아 곧장 식당 건물로 향했다.



    22km. 어느 정도의 거리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그래서 네이버 지도에서 길찾기를 해봤다.
    광화문 앞에서 과천 서울대공원까지 차가 가는 길이 20km로 나온다.
    광화문에서 시내를 지나 반포대교를 건너 우면산터널을 통과해야 나오는 서울대공원까지...



    여기 파이네 그란데 캠핑장에는 무료로 취사를 할 수 있는 건물이 있었다.
    가스통이 연결된 가스렌지도 있고 식탁도 있었다.

    우리가 트레킹을 마치고 들어섰을 때는 이미 캠핑객들로 인산인해였다
    창가 선반에 겨우 자리를 잡아 밥짓기에 돌입했다.

    밥은 다 되어가는데 우리 다섯명이 오손도손 앉을 자리가 없었다.
    밥을 다 먹어가는 팀을 찾아 눈을 부라렸다.
    그 때 딱 맘 상하게 하는 한 일행이 포착됐다.

    식사는 이미 끝났는데 포도주를 마시면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식탁과 의자는 가로로 긴 형태이고 의자는 등받이가 없는, 공원에 놓여있는 것과 같은 것인데
    그들 옆에 두사람 정도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정중하게 자리를 좀 비켜주겠냐고 말을 건넸는데
    아주 얄밉게 엉덩이만 조금 옮기면서 앉으라고 했다.
    다섯명이 냄비들고 서 있는 것을 보았고
    다섯명이라고 얘기를 했지만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부화가 치밀어 한마디 하려는데 상학이 먼저 치고 나왔다.
    "디스 이즈 키친, 노 게임!"
    짧지만 단호했고 강력한 경고였다.

    그제서야 밍기적거리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밤 10시가 넘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식사 준비중이었다.
    이 공간은 10시 반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안내되어 있었지만
    그 시각이 지난 후에도 밥을 하고 밥을 먹는 사람이 있을정도 붐볐다.

    상황이 그 정도면 빨리 밥 먹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 것이 글로벌 시민의식일텐데...

    어쨌든 우리들만의 무용담이 하나 더 생겼다.
    먼 훗날 다시 만날 때마다 웃으면서 얘기해도 또 재미날 얘기.



    다 먹고 설겆이 하고 씻고 하다보니 어느새 12시.
    배 부르니 피곤이 온 몸에 쫘악 퍼졌다.

    바람에 텐트는 펄럭이고 땅은 고르지 않고 침낭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몸은 한없이 힘들지만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것과 상관없이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의 첫날 밤은 무럭무럭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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