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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따라 세계여행::252일] 28시간 예정 버스여행세계여행/남미 2010 2011. 8. 19. 09:00반응형
1 0 . 0 1 . 1 0 . 일 | 아르헨티나 바릴로체 Argentina Bariloche
무뚝뚝한 아주머니,
안 통하는 말로 아침식사전에 떠나야한다는 의사표현을 하니 먼저 내어준다.
표정이 조금만 더 밝았어도 정말 고마웠을텐데... 얼굴이 석고상처럼 잔뜩 굳어 있어 괜히 머쓱했다.
8시 반에 숙소를 떠나 시내버스가 다니는 길로 내려왔다.
생각보다 너무 한산한 거리. 거리의 횡함으로 느껴지는 시각은 아침 6시.
고속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미리 표를 사 놓은 고속버스 출발 시각은 점점 다가왔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보고 그래도 안 오면 택시를 타자.
다행히 조금만 기다리는 중에 버스가 왔다.
배낭이 많이 무겁지만 그래도 내리막이 좀 낫다.
동전부족에 시달리던 마트.
아르헨티나에서 만나는 티벳과 설산반점.
바릴로체 버스터미널.
터미널 주변.
바람 많은 동네의 나무들.
다른 어디론가로 가는 버스.
우리가 타고 갈 버스. 짐을 실어주는 직원이 팁을 요구했다. 남미에서 그렇게 버스를 타고 다녔지만
이런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 아르헨티나 버스는 그런건가..
드디어 28시간 예정의 버스 여행이 시작되었다.
오후 4시 40분.
출발한지 7시간이 지났다. 이제 4분의 1 왔다.
버스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어느 작은 마을로 들어갔고 한 피자집 앞에 멈춰섰다.
피자집. 그렇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많은 메뉴 앞에서
든든하게 밥을 먹어야 하나 간단하게 라면을 먹을까 아니 우동이 더 맛있을까 고민하지만
여기서는 피자를 먹어야하나 말아야하나, 저 피자가 맛있을까 없을까를 고민해야했다.
버스에서 우르르 내린 사람들이 줄을 서서 주문을 했지만 우리는 미린다만 한 병 샀다.
여태까지 여행하면서 너무 짜 먹다 남긴 피자가 여러개다. 도전하고 싶지 않다. 입맛도 없다.
미린다 홀짝이면서 피자 먹는 사람들 구경하며 멀뚱멀뚱 1시간을 넘게 보냈다.
다시 출발이다.
영화를 이어서 틀어준다.
퍼블릭 에너미, 레인 메이커, 밀리언 달러 베이비.
몇 개 귀에 들어오는 단어와 앞 뒤 상황을 겨우 이어 맞추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러는 동안 버스는 열심히 달린다.
어딘지 알 수 없는 곳들을 달려나간다.
서울에서 부산 갈 때처럼 어디를 거쳐 어떤 길을 가는지 알면
얼마나 왔고 얼마를 가야할지 대충 감이 잡힐텐데
이렇게 처음 가는 길에선 낮에도 깜깜한 어둠속을 달리는 느낌이다.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있어도 런닝머신 위에서 제자리를 뛰는 느낌이다.
비행기의 모니터에 항로를 표시해주는 것처럼
버스에서도 왔던 길을 가고 있는 길을 지도에 표시해 주면 좋겠다.
버스는 칼레타 올리비아(깔레따 올리비아 Caleta Olivia)라는 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달렸다.
어둠을 헤집고 달리는 버스. 잠을 청해보지만 쉽지 않다.
어느 것에도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방해를 받지 않고
사색하기 좋은 시간인 듯 하지만 쉽지 않다.
생각은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나뭇가지처럼 자꾸 잔가지를 친다.
그러다 모든 생각이 지워지고 멍해진다.
창 밖의 어둠처럼 머릿속도 새카맣게 칠해진다.
정말 잠을 자야할 시간이 된 것일까?
그렇게 많이 허기지진 않지만 오전에 버스 타고 하루종일 먹은 것이라곤
바나나와 사과 하나씩, 과자 조금, 미린다, 그리고 생수 밖에 없다는 걸 되새기니 또 잠이 달아난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뒤척이는 야간버스에서의 밤이 그렇게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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