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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따라 세계여행::206일] 길고 먼 하루, 에콰도르에서 페루로...세계여행/남미 2009 2011. 5. 12. 09:30반응형
로하 버스터미널.
0 9 . 1 1 . 2 5 . 수 | 에콰도르 로하 -> 페루 리마 , Ecuador Loja -> Peru Lima
많은 아침잠으로 인해 평소 느끼기 힘든 새벽의 상쾌함을 맞으며 에콰도르를 떠난다.
어떻게 해도 남을 아쉬움도 함께 배낭 속에 차곡차곡 접어넣고 숙소 바로 맞은 편에 있는 터미널로 향했다.
빵과 주스로 대충 허기를 달래고 페루의 피우라(삐우라 Piura)라는 도시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한참 전부터 시동을 걸어놓은 버스는 버스표에 적힌 7시를 조금 넘기고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쉬어가기.
그렇지 않아도 높은 지대에 자리한 로하인데
버스터미널을 떠난 버스는 한참을 구불구불한 길을 꾸역꾸역 올라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다 꽂히듯 내리막을 달렸다.
창 밖의 풍경은 가이드북의 설명대로 절경이었지만 눈은 금새 적응을 해 버렸다.
밀려오는 졸음으로 무게가 실린 눈꺼풀 때문에 더 이상 감상이 힘들기도 했다.
12시15분 쯤 에콰도르의 국경도시, 마카라(마까라 Macara)에 도착했다.
버스터미널이 아닌 타고 온 버스회사의 간판이 붙어 있는 건물 앞에 버스가 멈춰섰다.
몇몇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몇몇은 버스회사 건물에 자리한 작은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로하는 2천미터가 넘는 고지대였던 탓인지 밤에는 제법 쌀쌀한 느낌마저 들었는데
이 곳은 뜨거운 햇살에 공기가 더이상 데워질 수 없을 만큼 달아올라있다.
완전히 상실한 입맛 때문에 점심은 거르기로 했다.
주스만 사서 건물 밖 그늘에 나와 앉았다.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다 건물의 화장실에 갔다.
유료 화장실.
라니는 25센트를 주고 그것으로 끝이었고
나는 1달러를 내고 90센트를 되돌려 받았다.
요상한 화장실 사용료를 두고 갸우뚱하며 환전할 수 없는 동전은 챙겨넣었다.
말 그대로 듣도 보도 못한 낯선 마을에서의 30분은 길게 흘러갔다.
얼마 안 가서 국경에 도착했다.
늘 남과 북의 국경만 알고 살아온 우리는 국경하면 삼엄함을 먼저 떠올리지만
지금까지 지나온 국경은 그런 상상과는 많이 달랐다.
에콰도르와 페루의 국경도 마찬가지.
어제도 수십번 찍었을 출국도장이 우리 여권에도 찍혔다.
철통경계 같은 것은 찾아 볼 수 없는 양국간에 놓여진 다리를 걸어서 건넜다.
정성껏 찍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게끔 하는 입국도장은 나라를 가리지 않고 또 건성으로 찍어줬다.
입국신고서를 제출했지만 여권정보와 입국시간을 따로 노트에 기입했다.
우리의 기록은 언제까지 남아있을까?
4시를 넘겨 피우라에 도착했다.
여기서도 공용버스터미널이 아니라 이 버스회사의 버스만 들락거리는 곳에 내려줬다.
이 회사의 버스 중에는 리마까지 가는 건 없고, 건물 밖 거리는 정신 없고, 다른 버스회사는 보이지 않았다.
가이드북의 약도만으로는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겠고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다.
직원들과는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물어보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인심 좋아 보이는 서양인 부부에게 혹시 리마에 가는지 물었다.
안 간단다. 역시 같은 버스를 타고 온 서양인 남자 둘이 있었지만 쉽게 말을 걸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그들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리마로 가요?"
"네."
"다른 버스회사까지 택시로 2달러라는데 같이 타고 갈래요?"
"아, 네, 그러죠, 고마워요."
그들의 호의가 고마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택시는 손님 넷에 각각이 가지고 있는 커다란 배낭까지 싣기에는 작았다.
기사가 3명까지만 탈 수 있다며 거절을 했다.
그들을 떠나 보내고 텅빈 대합실에서 다시 가이드북을 펼쳤다.
시내 약도를 보며 일단 어느 버스회사든지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침 또 택시기사가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어느 버스회사의 전단지가 들여있었다.
기사는 손가락으로 전단지를 가리키며 거기로 가자고 했다.
바로 콜!
택시를 타고 가고 있는데 버스회사들이 몰려 있는 곳을 지나쳐갔다.
여기 내려 버스비를 비교하고 선택해서 타면 좋을텐데 생각을 하면서도 택시를 멈추지 못했다.
택시기사가 데려다 준 크루스 델 수르(Cruz del Sur) 버스회사 터미널에
내려 표값을 알아보고는 후회가 더욱 커졌다.
가이드북에는 피우라에서 리마까지 버스비가 8달러부터라고 안내되어 있는데
여기 크루스 델 수르는 33달러.
물론 그만큼의 질적 차이가 분명 있을테지만
서비스 조금 덜 받고 조금 더 싸게 가고 싶은 것이 우리 마음이었다.
좀 전에 버스회사들이 많은 곳에서 스톱을 외쳤어야 했다.
돌아가려면 또 택시를 타야할 거리이고 시간은 점점 늦어져 가고,
하는 수 없이 크루스 델 수르를 선택했다.
6시 버스를 예약했다. 정신없이 여기까지 왔던터라 페루돈이 하나도 없었다.
다행히 달러를 받아주었다. 잔돈은 1달러에 2.7페소로 계산해서 받았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점심도 거르고 여기까지 왔다.
또 밤새 버스를 타고 가야하니 뭐라도 좀 먹어둬야 했다.
배낭을 메고 터미널 주변을 서성였다.
페루에서의 첫 식사. 해물밥과 해물탕 같은 것을 주문했다.
고수는 빼고 달라는 말은 잊지 않았다.
버스 출발 시각, 6시까지는 30분 밖에 남지 않았다.
초침은 또각또각 잘도 움직이는데 밥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애가 타 들어갔다.
밥이 먼저 나왔다.
기대했던 해물볶음밥처럼 나왔다.
입맛에도 맞았다. 허겁지겁 털어넣었다.
그릇을 비운 후에야 해물탕이 나왔다.
성공적인 해물볶음밥 때문에 가졌던 기대에는 어긋났다.
어색한 맛도 맛이었지만 뭣보다 바다의 짠맛이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버스 시간 때문에라도 다 먹을 수가 없었다.
버스를 놓칠까봐 무거운 배낭을 메고 허겁지겁 뛰어 왔는데
버스는 야속하게도 20분이나 늦게 왔다.
버스가 들어오자 대합실이 분주해졌다.
한켠에서는 직원들이 승객들의 짐을 짐칸에 싣고
한쪽에서는 경비원이 삼각대를 펼치고 비디오카메라를 설치했다.
카메라 설치를 마친 경비원은 금속탐지기를 꺼내들었다.
버스에 들고 타는 짐들을 검색했다.
내가 가지고 타는 작은 배낭을 금속탐지기로 훑는데 삐삑 소리가 났다.
다용도칼 때문이었다. 압수를 했다.
당황스러웠다. 비행기도 아니고 버스를 타는데 칼을 빼앗기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칼을 건네 받은 여자승무원이 귀여운 미소와 함께 유창한 영어로 얘기했다.
"칼은 저희가 보관하고 있다가 리마에 도착하면 돌려드릴께요."
생전 처음 보는 버스 탑승절차에 놀라고
칼을 압수하는 것에 놀라고
거기다 영어를 하는 승무원에 또 놀랐다.
하지만 놀라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합실 바로 앞에는 육중한 2층버스가 떡하니 서서 손님을 맞았다.
런던에서 2층버스를 타긴 했지만 장거리 버스는 이번 여행에서 처음이다.
2층에 올라가니 자리마다 베개와 담요가 자리마다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잉카문명의 느낌이 고스란히 담긴 버스회사의 로고가
천 색깔과 대비되는 노란색으로 밝게 박혀 있었다.
우리가 마추픽추의 나라 페루에 왔음을 뜻밖의 것으로부터 실감하게 됐다.
까다로운 탑승절차 때문에 버스는 도착한 후 20분이 지난 6시40분에야 시동을 걸었다.
버스가 출발한 후에도 놀라움은 이어졌다.
저녁식사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이런 줄도 모르고 식당에서 허겁지겁 밥을 사먹었다.
비싸다고 생각되는 버스비를 치르며 그만큼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라며 위로했는데 생각했던 것 이상이다.
푸짐하지는 않았지만 있을건 다 있었다.
고기, 밥, 우리네 만두 같은 엠파나다(엠빠나다 Empanada), 후식으로 쿠키, 그리고 음료수.
이미 저녁을 먹었지만 넉넉하게 먹지 못했고 점심도 걸렀던 터라 또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시장'이 아니라 '신기'라는 반찬도 있어서 또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다.
음료수는 페루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노란색 잉카콜라를 선택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잉카콜라의 오묘한 맛을 보며 등받이를 뒤로 제꼈다.
안타깝게도 라니는 고기냄새를 맡고 갑자기 속이 안 좋아져 하나도 입에 대지 못했다.
여기서 끝이라면 놀랍다고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또 이어졌다.
식판을 거둬들이고는 커피와 차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나서는 또 숫자가 적힌 종이를 나눠줬다.
빙고게임. 이걸 버스에서 어떻게 하나 했더니 종이배포가 끝난 후 바로 승무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번호를 하나씩 불러줬다. 스페인어와 함께 영어로도 불러주는 친절을 과시했다.
자기가 가진 숫자가 모두 나오면 빙고.
우리가 가진 번호가 나올 때마다 사소한 기쁨을 느끼는데 저기 멀리서 누군가 빙고를 외쳤다.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선물 증정식이 이어졌다.
그리고 인터뷰까지 하는 그들의 진행에 혀를 내둘러야했다.
각자의 몫으로 나눠져야하는 장거리야간버스의 무료함을 나눠가지는 그들의 노력이 가상했다.
빙고게임이 끝난 후에는 영화상영이 이어졌다.
콜롬비아의 버스에서도 틀어줬던 테이큰(Taken)이었다.
같은 영화에 똑같은 스페인어 더빙이지만 이들은 영어자막을 띄워주었다.
한국에서도 보았고 이번이 벌써 세번째이지만 자상한 배려를 느끼며 다시 한 번 봤다.
영화가 끝나고 비로소 버스는 정적에 휩싸였다.
길었던 하루가 끝나지 않은 채 달리는 버스 속에서 내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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