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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따라 세계여행::191일] 산동네 케이블카세계여행/남미 2009 2011. 4. 9. 14:00반응형
0 9 . 1 1 . 1 0 . 화 | 콜롬비아 메데진 Colombia Medellin
원래 오늘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주저 앉았다.
8시에 울린 손목시계의 갸날픈 알람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지만
10분을 더 뭉그적거린 후에야 일어나 샤워를 했다.
라니 차례가 되었지만 그녀는 일어나지 않았다.
침대에 접착이 된 것처럼 누워서는 애처롭게 말했다.
"하루만 더 있다 가면 안될까?"
나는 그녀를 설득하고 어르고 달랬지만 속으로는 갈등하고 있었다.
정말 딱 하루만 더 있다 갈까?
여긴 인터넷도 잘 되고 김치도 있고 한글책도 있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렇지만 이 도시엔 더 보고 싶은 인상적인 것도 없는데다 이미 많이 쉬었잖아.
남미에 오기 전에는 본격적인 남미여행을 시작하기 앞서
6개월간의 긴 여행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며 느긋하게 쉬려고 했었다.
하지만 막상 쉬면서는 그냥 이렇게 날들을 보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긴 남민데, 한국에서 맘만 먹으면 쉽게 올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닌데...
그렇게 갈등하는 사이에 떠날 타이밍은 놓쳐졌다.
숙소 제공 아침을 먹고 나서 라니는 어제 밤에 끝내 다 읽지 못한
한글로 된 소설책을 다시 펼쳤고 나는 인터넷에 펼쳐진 정보의 바다에 입수했다.
그리고 살짝 배가 고파질 때 쯤 졸음이 밀려왔다.
눈을 떠 보고 화들짝 놀랬다.
3시가 넘어 있었다.
이렇게 나태해도 되는 걸까?
만회할 거리가 필요하다.
어디라도 다녀오면 나태가 휴식으로 탈바꿈 할 것 같다.
숙소 맞은 편에 있는 도미노피자에 가서 피자를 먹고
산토 도밍고(산또 도밍고 Santo Domingo)에 가기로 했다.
시내버스. 버스내부의 개찰구. 탑승객수를 체크하는 것인지...
> 메트로 표
보고타에서도 그랬지만 노란택시의 절대 다수가 우리나라의 경차.
숙소 앞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 전철로 갈아탔다.
그리고 아세베도(Acevedo)라는 이름의 역에 내려 같은 건물에 연결된 케이블카를 탔다.
별도의 추가비용 없이 환승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탔던 케이블카는 남산의 케이블카처럼 대부분 관광용이었다.
하지만 이 곳의 케이블카는 전철이나 버스와 다름없는 교통수단이었다.
산동네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케이블카라...
왜 우리나라처럼 마을버스를 운행하지 않고 케이블카를 선택했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케이블카 아래로는 작은 버스정도는 충분히 다닐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아무튼 독특한 경험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다소 모순된 감정을 안겨주는 경험이기도 했다.
산을 점령해버린 마을을 신기하게 쳐다보다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고된 삶을 대변하는 듯한 집들을
'구경'하는 것이 왠지 미안하게 느껴졌다.
에스파냐 도서관 공원.
세번째이자 마지막인 케이블카 역에서 내렸다.
케이블카가 놓이고 주민들을 위한 도서관이 세워지는 등
예전에 비해서는 환경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마음 놓고 다녀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들어서
역 밖으로 나가는 것이 무척 조심스러웠다.
군데군데 서 있는 경찰과 군인들을 보고서야 조금 안심이 되었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오면서 봤던 특이한 모양새를 한 검은 색의
도서관 건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뗐다.
도서관을 잠시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난간에 기대어 섰다.
발 아래 산동네부터 저 멀리 이름을 알 수 없는 메데진의 어느 곳까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원래 위험한 동네는 해가 지면 어둠이 주는 공포와 함께 더 위험해지기 마련이라 이제 그만 내려갈까 했다.
하지만 내일이면 정말 떠날 메데진의 야경을 보고 싶었다.
케이블카 역이 가까우니 냉큼 뛰어가면 될 것 같았다.
해가 지면서 불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고 곧이어 햇빛을 대신해 도시를 밝혔다.
그리고 벽돌로 눌러놓은 슬레이트 지붕은 사라지고 같은 노란 조명 속에
높다란 빌딩이 들어선 시내와 함께 하나의 야경이 되었다.
산토 도밍고에서 바라본 메데진의 야경.
전철역에서 바라본 산토 도밍고의 야경.
나올 때 숙소에서 전철역까지 무사히 버스를 타고 이동했기에 이번에도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정류장에 안내원 같은, 조끼를 입은 분이 있어 물어보고 버스를 탔다.
타고 나서도 숙소 앞을 지나는 33번길로 가는지 확인했다.
잠시 지나 익숙한 길로 들어서는 것 같아 마음을 놓는 순간
버스는 좌회전을 해 작은 길로 접어들었다.
그 작은 길을 조금 돌다 다시 큰 길로 나갈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어두운 밤길을 가르고 주택가를 한참이나 달렸다.
척추에 빡빡하게 힘이 들어갔다.
도대체 어디서 내려야할까?
더 이상은 안되겠다, 기사 아저씨든 다른 승객에게든
말이 안 통해도 물어봐야겠다라고 마음 먹은 순간
기사아저씨가 내리라고 했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라고 내리라는거야?
걱정스런 눈빛으로 창밖을 내다봤는데 이제는 이마트만큼이나
눈에 익은 마트, Exito가 눈에 들어왔다.
그 곳은 그저께 왔던 복합쇼핑몰이었다.
내가 확인하고자 했던 바를 잘 전달하고 전달받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가 보다.
말이 통하는 곳에서도 말이 안 통할 때가 있으니...
말이 통하지 않는 이 곳에서는 어쩌면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엉뚱한 곳으로 왔지만 숙소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아는 곳에 내려 그나마 다행이다.
마트에서 생수, 과자, 바나나를 사서 숙소로 갔다.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밤길을 걸어가는 것이
썩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탄 시내버스의 내부.
점심을 늦게 먹는 바람에 속은 여전히 더부룩하고
밤은 깊어가는데 저녁은 또 어떻게 해야하나,
라면이나 끓여 먹고 말아야하나 하고 있는데
주인내외분이 밥을 해 오셨다는 전갈이 왔다.
주방이 있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큰 생선을 구워오셨다. 거기에 콩나물무침까지.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숙소의 한국사람들이 오손도손 모여 감사하게 잘 먹었다.
내일 떠나는 우리에겐 큰 선물이나 다름 없었다.
고마운 마음 잘 안고 내일은 정말 떠나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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