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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따라 세계여행::187일] 추운 버스 타고 훈훈한 메데진으로
    세계여행/남미 2009 2011. 3. 3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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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9 . 1 1 . 0 6 . 금 | 콜롬비아 메데진 Colombia Medellin


    가볍고 따뜻하고 작게 접을 수 있는 오리털 침낭. 가져오길 참 잘 했다.
    아프리카에서의 오버랜드투어에서 사용하기 위함이 준비의 주목적이었지만
    오버랜드투어가 끝난 후에도 시시때때로 잘 썼다.
    하지만 적도가 그리 멀지 않은 콜롬비아에서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유리창에 이슬이 맺힐정도로 에어컨을 세게 틀어대 한겨울의 계곡물에 
    입수하고 나온 것처럼 발발 떨어댔는데 그래도 침낭을 덮으니 한결 낫다.

    침낭을 덮고 있으니 한 달전에 잃어버린 침낭이 또 생각난다.
    모로코의 공항에서 체크인할 때는 분명 배낭에 매달려 있었는데
    스페인의 공항에서 찾을 때는 사라지고 없었다.
    극심한 온도 차이 때문에 창 밖에 이슬 맺혀 밖은 보이지도 않고
    하는 수 없이 영화를 틀어주는 모니터에 시선을 꽂는데 잃어버린 침낭 생각에 속이 쓰려온다.
    아무쪼록 하나 남은 침낭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잘 간수해야겠다.


    버스에 달린 텔레비전에서는 투모로우(Tomorrow)가 나온다.
    왜 하필 투모로우야.. 눈까지도 얼려버릴 샘인가 보다.
    기후변화로 온통 얼음세상이 되는 영화를 이 추운 버스 안에서 틀게 뭐람.
    그 영화를 극장에서 볼 때도 에어컨을 세게 틀었었다.
    팔에 소름이 돋힌 채로 아주 실감나게 봤었던
    좋지 않은 기억까지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래도 한 침낭을 같이 덮은 우리 사이에 온기가 퍼진다.
    그리고 바짝 수축되어 있던 몸이 풀리면서 스르륵 잠이 몰려온다.
    다행히 영화 속 지구가 얼어붙기 전에 잠이 들었다.


    ...


    갑자기 시끄러워 놀래서 눈을 뜨니 영화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어느새 영화가 바뀌어 이탈리안 잡(Italian Job)이 나오고 있었다.
    아주 마음에 쏙 들었던 영화였던지라 봤던 영화인데도 눈이 계속 간다.

    한참 잘 보고 있는데 갑자기 텔레비전이 꺼져 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켜지지 않았다. 젠장, 잠 다 깨워놓고선...

    버스는 어둠을 쉼없이 가르고 달리고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오랜만에 버스를 타 괜찮을 줄 알았는데 또 무릎이 아파온다.
    언젠가부터 장거리버스를 타면 다리를 잘 움직일 수 있는 좁지 않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무릎이 심하게 아프다.
    장거리 버스를 탈 날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걱정이다.

    라니는 포장상태가 좋지 않은 길을 지나가는 사이에 멀미를 했다.
    다행히 카르타헤나 버스터미널에서 먹었던 것을 다시 확인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얼마 더 가서는 쏟아지는 비소리에 깼다.
    그렇게 버스에서의 밤이 지나가고 있다.




    오전 4시 16분. 버스가 섰다.
    운전석과 승객석 사이에 가로놓여 있던 벽의 문이 열렸다.
    휴게소 같은 곳이었다. 라니는 계속 앉아서 자고 나는 저린 무릎 때문에 차에서 내렸다.

    몇십명이 코와 입과 몸으로 내뿜는 탁한 공기로 가득 찬 버스에서 내리니 상쾌했다.
    다른 이들은 군것질을 하느라 무척이나 바빴다. 나도 허기가 졌지만 입맛이 없었다.
    낯선 음식, 통하지 않는 말, 그 난관들을 헤치고 사 먹고 싶은 의지도 발하지 않았다.

    문득 우리나라의 고속도로 휴게소가 그리웠다.
    몇 번 갔던 휴게소는 익숙해서 편하고 처음 가는 휴게소도 전혀 불편하지 않은.
    뜨끈한 국물의 라면, 우동이 떠오르며 마음에 김이 서렸다.



    ...



    밤새 버스를 타고 오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준 아주 고마운 아저씨가 계셨다.

    숙소를 찾다가 택시를 타게 되었다.
    주소를 건넸지만 한번에 찾지 못하고 헤맸다.
    기사 아저씨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묻고 물어 찾아갔다.
    미터기에 육천몇백페소가 찍혔다.

    아저씨, 요금을 치르려는 우리를 보면서
    천단위만 남겨놓고 나머지를 검지손가락으로 가렸다.
    말이 통하지 않아 정확한 의사소통은 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헤매느라 요금이 더 나왔으니 덜 받겠다는 뜻인 듯 했다.

    모든 것이 낯선 외지인을 태우고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일부러 돌고 돌아 가는 못 된 사람들도 있는 험한 세상에서
    이런 천사같은 분을 만나다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우리는 선한 얼굴의 아저씨가 너무 고마웠다.
    어디가 어딘지 몰라 두리번거리기만 하는 다른 생김새의 이방인을 위하는 그 마음이 너무 따뜻했다.
    아저씨의 호의를 거스르고 감사의 뜻으로 7천페소를 내밀었다.
    아저씨는 1천페소를 다시 돌려주려고 했지만 받지 않았다.

    날씨만큼이나 훈훈한 메데진이다.



    .16시간 걸린 이도 있다던데 13시간만에 도착.
    .짐 내리면서 생긴 사소한 일 때문에 아침 댓바람부터 부부싸움.
    .숙소 잡고 현지라면 끓여 먹고 라니는 자고 나는 인터넷 사용.
    .숙소에서 추천하는 근처의 햄버거집에 가서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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