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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따라 세계여행::183일] 카리브해로 달래는 향수세계여행/남미 2009 2011. 3. 23. 10:10반응형
보고타 엘도라도(El Dorado) 공항.
0 9 . 1 1 . 0 2 . 월 | 콜롬비아 보고타(보고따) -> 카르타헤나(까르따헤나) Colombia Bogota -> Cartagena
콜롬비아의 북쪽, 카리브해에 접해 있는 카르타헤나로 간다.
보고타에서 버스로는 자그마치 20시간을 넘게 가야 하는 곳.
케냐와 이집트에서 기차 침대칸을 타고 열대여섯 시간을 간 적은 있지만
버스는 터키에서 10시간 정도를 탄 것이 최장이다.
남미여행에서 장거리 버스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지만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걸까,
20시간을 넘게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 버스와 비슷한 가격으로 비행기표를 예매할 수 있었다.
오전 9시. 보고타에서 공부하며 태양여관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보경양이 불러준 택시가 도착했다.
카르타헤나를 다녀 온 적이 있다며 숙소를 추천해 준 그녀와 인사를 나누고
여덟 밤을 자며 정이 들었던 태양여관을 떠났다.
그녀가 일러준 국내선 터미널에 도착했지만
우리가 타야할 아이레스(Aires)라는 이름의 항공사 카운터는 보이지 않았다.
온통 아비앙카(Avianca)항공 카운터만 줄 지어 있었다.
똑같은 공항이지만 밤에 도착했던 일주일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
작은 항공사라 한 쪽 구석에 있나 싶어 카운터 끝에서 끝까지
배낭을 실은 카드를 밀고 다니면서 훑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여유있게 도착해 당황스러움을 희석시킬 수 있었다.
물어 물어 무료셔틀버스를 타고 다른 터미널로 이동했다.
체크인을 하고 늦은 아침으로 빵과 커피를 먹으며 한숨 돌렸다.
(비행기표)
활주로에 서 있는 비행기들 사진을 찍으며 탑승구 앞에서 비행기 타기를 기다리는데
항공사 직원들이 와서는 알아 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로만 계속 방송을 해 댔다.
한번쯤은 영어로 해줄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기다리는 사람들의
동요가 없는 것을 보니 큰 일은 아닌 듯 했다.
그들과 함께 조용히 탑승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결국 원래 출발시간에서 50분이 더 흐른 후에야 비행기는 이륙했다.
카르타헤나 공항.
당연한 얘기지만 역시 비행기는 빠르다.
버스로 20시간이 넘게 걸린다는데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듣던대로 과연 제대로 덥다.
냉방이 되고 있는 공항 건물 안에서도 그 열기를 짐작할 수 있다.
보고타의 날씨에 맞춰 입은 긴 팔, 긴 바지의 옷이 너무 거추장스럽다.
라니는 공항 화장실에서 민소매 옷으로 갈아입었다.
안내소에 물어보니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공항에서 한 블럭을 나가야한다고 알려주었다.
여비 좀 아껴보겠다고 그 더운데 배낭을 메고 버스정류장을 찾아갔다.
짧은 거리지만 더운 날씨에 등이 땀으로 촉촉히 젖어갔다.
버스는 금방 왔다. 차장이 따로 있었다.
숙소 주소를 적은 쪽지를 보여주니 반대방향에서 타야한다고 손짓해 주었다.
반대편에서도 금방 버스가 왔다.
이번에도 쪽지를 내밀고 확인을 하고 탔다.
버스가 커서 배낭을 가지고 타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버스에서는 방정 맞은 음악이 큰 소리로 흘러 나오고 있었다.
기사 아저씨는 불편해 보이지만 땀은 차지 않을 것 같은 조악한 의자에 앉아 버스를 몰았다.
머리 위에서는 날이 그대로 들어난 선풍기가 위태롭게 돌아갔다.
낯선 도시에서 처음 도착했을 때 늘 따르는 긴장감이 재미난 버스에서 금새 사라졌다.
시내로 가는 버스.
어디가 어딘지 도통 알 수 없는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한참을 갔다.
버스가 정류장인 듯한 곳에 설 때마다 허리를 곧추 세우고 차장 아저씨와 시선을 맞추었다.
아저씨는 우리가 보여준 주소를 잊지 않고 그 곳에서 가장 가까운 정류소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방을 잡자마자 샤워를 했다.
오늘 아침, 보고타에서는 서늘한 샤워실에서 뜨거운 물이 나오길
조바심 내며 기다렸는데 불과 몇시간만에 차가운 물에 끈적한 몸을 씻어내고 있다.
새로운 곳에 왔음을 그렇게 다시 한번 느끼며 센트로(센뜨로 Centro)로 향했다.
어느 새 3시가 넘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센트로 입구에 있는 패스트푸드점 같은 곳에 들어갔다.
닭고기를 주메뉴로 하는 곳인 듯 했다. 닭고기 몇점이 나오는 것과 햄버거를 주문했다.
배를 채우고 해가 조금 기울어 더위가 아주 약간 옅어진 길을 걸었다.
아주 오랜 세월 바닷바람과 마주하고 뜨거운 태양을 견뎌내었을 성곽을 만났다.
그리고 그 너머로 드디어 카리브해가 나타났다.
카리브해 하면 떠오르는 여러가지 것들은 전혀 없고 그저 뜨겁고 잔잔한 바다만 있었다.
태평양, 대서양과 다를 바 없는 같은 바다지만 그저 반갑기만 하다.
떠나기로 해 놓고도 엄두가 안 나던 긴 여행.
비행기를 타고 출발을 했지만 잘 실감나지 않던 긴 여행.
그런데 어느새 태평양을 지나 인도양을 거쳐 지중해를 두르고 대서양을 가로질러 카리브해까지 왔다.
스스로도 대견하고 또 한편으로 신기하다.
그렇게 멀리 그렇게 길게 떠나왔기에 몇일간 달콤쌉싸르한 휴식을 취했었다.
하지만 휴식은 집에 대한 향수를 불러왔다.
사소한 것들까지 그리웠다.
이렇게 움직여 또 새로운 곳에 오니 좀 낫다.
카리브해로 향수를 씻어낸다.
여행으로 생긴 향수를 다시 여행으로 지워낸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이 곳에서도 보테로(Botero)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민속촌 같은, 카르타헤나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이 곳에서 저녁을 먹을까 했지만
마땅한 식당을 찾을 수 없었다. 영업중인 곳은 고급식당들이 대부분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숙소에서 간단하게 스파게티라도 해 먹을까 했는데 작은 슈퍼는 문을 닫았다.
아직 길이 낯설어서인지 숙소 근처에서도 식당을 찾지 못했다.
분명 있을텐데 하면서 숙소로 들어와 칠레 산티아고에서 산 귀한 짜파게티를 꺼냈다.
우연찮게 오늘은 일요일. 주방이라는 이름이 무색할만큼 냄비며 식기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요리사가 되었다.
해가 졌음에도 여전히 텁텁한 공기 때문에
뜨거운 국물도 없는 짜파게티를 먹으면서도 콧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냉큼 설겆이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 에어컨을 강으로 틀었다.
더워서 힘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시원한 물에 샤워를 하고
간단한 차림새로 침대에 벌러덩 누울 수 있는 이 날씨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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