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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따라 세계여행::160일] 삐끼를 물리치고 가죽염색공장으로..
    세계여행/유럽_지중해_모로코 2009 2010. 12. 1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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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9 . 1 0 . 1 0 . 토 | 모로코 페스 Morocco Fes


    아침 일찍 가야 염색공장에 다양한 색의 염료가 풀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일찍 일어났다. 8시. 일찍 일어났다고 하기에는
    부끄러운 시각이지만 아침잠 많기로는 둘 다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는데다가
    모로코에 온 이후 늘어질대로 늘어진 몸과 마음을 생각하면 나름 노력해서 일어난 것이다.


    몸은 무겁지만 그래도 몇일만에 뭔가를 한다는 생각에 상쾌한 마음으로 나섰다.
    메디나(Medina)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왕궁을 만났다.
    화려한 타일공예에 다시 한 번 감탄하며 사진에 담고 메디나로의 발걸음을 이었다.



    왕궁.







    카메라로 찍은 지도를 카메라의 작은 화면으로 보면서
    길을 찾고 있는데 영어를 하는 어떤 아저씨가 다가왔다.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메디나요.."
    '그럼, 날 따라 오십시오.'
    "?"

    낯선 사람의 친절에는 항상 망설임이 일어난다.

    '난 가이드(호객꾼)는 아니고 공예품 작업실과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메디나로 가려면 어짜피 우리 가게를 지나야 하니 나와 같이 가면 됩니다.'

    사기꾼이 어디, 자기 이마에 사기꾼이라고 적어 놓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쾌적한 여행을 위해서는 사기꾼이나 호객꾼과 진정 도와주려는 분들을
    잘 구별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으니 잠깐 일시정지 상태가 되었다.

    어서 빨리 염색공장에 가고 싶은 마음에 그를 따라 나섰다.
    낌새가 이상하면 그를 따돌리면 될 일이다.





    그는 우리 마음을 알아챘다는 듯 무척 빠른 발걸음으로 좁은 골목을
    헤집고 앞서 나갔다. 그를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옮기는 발걸음이
    늘어날수록 의구심의 먼지는 크게 일었다.

    오래된 골목이 다들 그렇듯 구불구불하고 미로처럼 엉켜 있었고
    이 골목 저 골목 지날 때 마다 왠지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은 그러했지만 그를 계속 따라 갈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우리는 골목 깊숙한 곳에 들어와 버렸다.

    한참을 거의 뛰다시피 하는 경보선수처럼 걸은 후에야 그의 가게에 도착했다.
    들어와서 구경하고 가라는 그의 말을 손바닥을 내밀어 흔들며 반사시켰다.
    다행히 그는 거기서 호객행위를 마쳤다. 그리고 메디나로 가는 방향을 가리켰다.

    지도의 어디쯤인지는 대강 파악이 되는데 메디나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하는 것이 좋은지
    선뜻 판단이 서지 않았다. 전혀 호객꾼으로 보이지 않는, 길을 지나가던 순수 청년에게 길을 물었다.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가다가 다시 지도를 보고 있는데 또 다시 영어를 하는 한 아저씨가 접근해 왔다.

    그도 조금 전의 그 순수 청년이 가리킨 방향과 똑같은 방향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 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다 다시 지도를 보고 있는데 아저씨가 다시 다가와서는 자기를 따라 오라고 했다.

    이번에는 순수히 그의 뒤를 따랐다.
    처음의 그 순수 청년이 가리킨 방향과 똑같은 방향으로 길을 가리켜줬기 때문에
    조금 미심쩍은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를 믿어 보기로 한 것이다.





    성벽을 따라 나 있는 큰 도로를 한참 걷다가 성벽 안으로 들어갔다.
    (성 안쪽이 구시가지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메디나였다.)
    또 좁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걸었다. 앞서 가던 그가 갑자기 멈춰섰다.

    '이 쪽으로 올라가면 메디나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파노라마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리로 올라갑시다.'

    순간 느낌이 살짝 왔다. 순수 아저씨는 아닌 듯 했다.
    지도에 있는 클락(Clock)이라는 이름의 카페를 찾으면
    길찾기가 용의할 것 같기도 하고 그를 떼어놓기도 좋을 것 같았다.

    "이 카페 아세요?"
    '음.. 오늘은 토요일이라 문을 닫았을겁니다.'

    확실한 느낌이 왔다. 이제는 그와 이별을 해야겠다.

    "그래도 한번 가 볼렵니다."
    '원래 여기는 금요일이 쉬는 날이지만, 그 카페는 서양사람이 운영하는 곳이라 토요일에 쉽니다.'
    (메디나 구경 다 하고 찾아갔는데 영업을 하고 있었다.)

    아저씨, 근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럼, 우리가 알아서 찾아갈께요. 어쨌든 고맙습니다."

    길도 모르면서 당당한 척 하는 발걸음을 내딛는데 아저씨가 말로 우리를 붙잡았다.

    '팁은 주고 가셔야죠.'
    "팁이라니요...?"
    '여기까지 내 시간 써가며 데려다 줬으니 사례는 해야하지 않습니까?'

    선친절 후청구. 처음엔 선의로 나서는 것처럼 하다가 나중에 가이드 해줬지 않나며
    팁을 요구하는 이런 행태를 처음 겪는 것은 아니어서 놀라지는 않았다.
    다만 더운 날씨와 함께 짜증을 유발시킬 뿐이었다.

    우리는 메디나 입구까지만 가면 되는 것이었다.
    풍경 좋은 곳으로 데려다 달라는 요구를 한 적도 메디나를 안내달라고 청한 적도 없다.
    거기다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까지 해 놓고선 돈을 내놓으라는 그가 참 얄미웠다.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획 돌아서서 직진을 했다.
    이런 골목길은 헤매는 것도 나름 재미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한동안은 그냥 발길 닿는대로 걸었다.





    다른 때 같으면 천천히 여유롭게 구경하며 길을 찾았을텐데
    오늘은 그렇지 못했다. 일단 첫번째 목표가 가죽염색공장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첫번째 장소는 가능한 일찍 가는 게 좋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정신없이 시장 골목을 헤집고 다녔다.
    하지만, 염색공장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미로도 이런 미로가 없을 것 같았다.
    (페스의 메디나는 9천개가 넘는 골목으로 짜여져 있다.)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가이드북 론리플래닛을 들고 있지만
    우리처럼 길을 헤매고 있는 것 같은 서양인 2명을 만났다.

    "실례합니다.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그들이 펼쳐놓고 있는 지도를 보며 물었다.
    '이 쯤인 것 같은데, 글쎄요.. 저희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태너리(Tannery, 무두질공장, 가죽염색공장)에는 다녀오셨습니까?"
    '아니요, 아직 못 갔습니다. 두 분은요?'
    "저희도 아직... 같이 찾아볼까요?"



    가요계의 프로젝트그룹처럼 우리도 일시적으로 동지가 되었다.
    가게 주인에게도 물어보고 지나가는 단체관광객에게도 물어보며 가죽염색공장을 찾았다.
    그런데 갑자기 메디나 밖으로 불쑥 나와버렸다. 당황스러웠다.

    또 물어물어 가다가보니 작은 하천이 나타났고 그 하천변에서 가죽을 손질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아직 털이 제거되지 않은 가죽들이 한켠에 가득 쌓여있었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악취가 피어올랐다.
    미간을 있는대로 찡그리며 힘들게, 생경한 풍경 여기저기를 살피는데
    일하시는 분들은 이런 우리가 익숙하다는 듯 웃으면서 반겨주었다.

    아무리 숙명처럼 하게 된 일이고 수많은 시간이 쌓이면서 일상이 되었다 해도
    내리쬐는 햇빛에 코와 머리를 뒤흔드는 악취가 나는 열악하기 짝이 없는 작업공간에서
    웃음을 보인다는 것은 쉽지 않을텐데... 그들은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미소가 우리 미간을 펴 주었다.


    가죽제작공정 중 어느 단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털이 제거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던 하천변.


    오른쪽 그늘 아래에 쌓여 있는 것들이 모두 가죽.





    털이 제거되지 않은 가죽들.














    염색된 가죽들.








    윗쪽에 구경중인 관광객들이 보인다.


    하천을 기준으로 해서 지도를 보니 대강 감이 잡혔다. 다시 메디나로 들어섰다.
    한 곳의 작업실과 한 곳의 가죽제품가게를 거쳐 드디어 사진으로만 봐 왔던 바로 그 곳을 찾았다.
    둥근 우물 모양 혹은 목욕탕 같은 것들이 팔레트처럼 모여 있는 가죽공장.

    바로 건너편 건물옥상에 올라가면 사진의 구도대로 그 풍경이 정확하게 펼쳐질 것
    같은데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럴 때는 돈을 조금 쥐어 주더라도 호객꾼이 필요한데..
    라고 생각한 바로 그 때 어떤 아저씨가 나타나 따라오라고 했다.

    라니는 다량의 도보와 강한 냄새에 많이 지쳐 밖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나는 아저씨를 쫓아갔다.
    골목에서 이어진 더 좁은 골목을 몇 개 지나 한 건물에 들어갔다.

    벽면을 한가득 메우고 있는 가죽제품들을 곁눈질하며 옥상으로 올라갔다.
    박하잎을 건네받았다. 이미 관광객 몇이 코에 박하잎을 댄 채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냄새가 고약하긴 했지만 박하잎을 그냥 손에만 쥐고 있었다.
    간간히 박하잎의 상큼한 향을 코에 들이넣기는 했지만
    그것 없이도 충분히 견딜만 했다.














    유적지에 가면 타임머신 생각이 많이 났었다.
    그 옛날 그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때는 그 곳의 풍경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정말 영화에서 재현해낸 그 모습대로일지 너무 궁금해 관람만 하고 올 수 있는
    타임머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여기는 이미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느낌이었다.
    이미 메디나를 헤매면서 느꼈던 것이기도 했다.
    차들은 볼 수 없고 당나귀들이 짐을 나르는 좁은 골목,
    기계는 찾아볼 수 없고 모든 것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가죽공장.

    한참을 내려다 보다 라니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렸다.
    박하도 받았지, 구경도 잘 했지, 얼마 안 되는 돈이라도 팁으로 좀 건네야할 것 같은데
    돈은 라니가 가지고 있었다.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면 어떡하나 난감해 하는데
    어느 누구 하나 팁을 요구하지 않았다. 내려가면서 가게에 전시된 가죽제품들을
    신경써서 구경하는 것으로 나름의 예의를 차렸다. 

    라니를 만나 점심을 먹으러 가려는데 가죽을 등에 잔뜩 진 당나귀 행렬이 앞을 가로 막았다.









    모든 것이 수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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