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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사 오기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는 크고 작은 다양한 나무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이사와 보니 큰 나무들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늘이 많이 졌다. 정원에 하루 종일 해가 드는 구역이 너무 적었다. 그래서 정원 안쪽의 아주 굵고 크게 자란 소나무 4그루를 제외하고 정원에 그늘을 만드는 소나무들을 이사 오고 처음 맞은 봄에 베어버렸다. 오랜 시간을 머금고 자란 소나무를 베어내는 것이 유쾌한 일도 아니었고 난생처음 체인톱을 사용하는 것이 겁났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 후 첫 사계절을 보내며 단점 하나를 더 알게 되었다. 낙엽이었다. 특히 솔잎. 늘푸른 나무로만 생각했던 탓인지 소나무에서 그렇게 낙엽이 많이 지는 건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활엽수의 낙엽은 바람에 잘 날리기도 하고 잘 바스러지기도 하며 삭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지만 소나무의 낙엽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가느다랗고 길다 보니 잔디밭과 암반 등에 떨어진 솔잎은 바람에 잘 날리지도 않고 쓸어 담는 것도 용이하지 않다. 집 보다 크다 보니 빗물받이에는 또 얼마나 떨어지는지...
한동안 신경을 좀 덜 썼더니 빗물받이에 솔잎이 한가득이었다. 1월 18일. 한겨울이지만 바람도 적고 포근한 날씨여서 가벼운 마음으로 정원에 나왔다. 창고에서 무거운 사다리를 옮겨 펼치고 연장해 빗물받이에 대고 올라가 정리를 했다. 깨끗하게 비워진 빗물받이를 보니 마음이 상쾌해졌지만 금방 불어닥칠 겨울의 매서운 바람에 또 우수수 떨어질 누런 솔잎을 생각하니 금방 불쾌해졌다. 도돌이표 같은 일을 5년 넘게 반복하다 보니 소나무를 확 다 잘라버리고 싶다는 감정으로까지 연결되지만 너무 커서 직접 자를 수는 없고 전문가를 불러야 할 텐데 그러면 또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드니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또 한번의 사계절이 지나간다.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