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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고양이.죽음
    탐나는도다/생활 2019.04.23 00:20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 일어났다.
    2차선 도로에 접한 이 집에 살기 시작한 후 6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번도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다 하며 살았는데 결국은 마주하고 말았다.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차의 속도를 줄이는데 집 앞 가로수 아래에 고양이 한마리가 누워 있었다.
    그 자리에서 그렇게 누워 있을리 만무하므로 순간 직감해 버렸다.
    마음이 내려 앉았다.

    거리가 가까워지며 또 한번 출렁거리는 마음을 다 잡아야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집 마당에서 사료와 물을 먹었던 고양이 중 한마리였다.
    현관문을 나서면 가까이 다가와 고개를 쳐들고 앙앙 울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허망하게 숨을 거둔 채 쓰러져 있었다.

     

    왜 거기에 죽은 채로 있는거니...
    어떻게 된 거니?
    별다른 외상이 없어 단정짓기가 어렵지만 로드킬의 가능성이 가장 커보였다.

     

    집 앞 도로에는 낮동안 차들이 많이 지나다닌다. 
    거기다 빨리 내달리는 차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 길을 가로지르는 고양이들을 볼 때 마다 속으로 '제발...'을 되뇌인다.
    제발 차조심 하렴. 제발 다치지 말아야 해.
    로드킬로 목숨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마음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눈 앞에 벌어질 아찔한 모습과 그 뒷처리를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외는 주문이기도 했다.

    잘 지내왔는데 결국 우려했던 일과 마주하게 되었다.
    제주도에 살며 정말 셀 수 없을 정도로 수없이 목격했던 로드킬.
    대부분 달리는 차 안에서의 경험이었고 시선을 피하거나 핸들을 꺾는 것만으로 회피했었다.
    끊임없이 차들이 달리는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숨진 채 누워있는 고양이들을 거둘 용기를 차마 낼 수 없었다.
    다른 누군가에게 미뤘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는 일이 내 앞에 놓였다.
    우리집 바로 앞에, 그것도 밥을 주며 교감했던 그 고양이.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우선 집 한 켠에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새 삽은 더 깊이 덜어가지 못했다.
    여기는 제주도. 온통 돌이다.
    두어군데 다른 곳을 파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할 수 없이 그 중에 조금이나마 깊이 팔 수 있는 곳을 선택했다.

    적지 않은 덩치의 숫컷, 이미 죽은 몸이지만 편히 쉴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
    최대한 넓고 깊게 자리를 마련하려 했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저질 체력, 삽질이 만만하지 않았다.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눈에서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마음에서 흘린 눈물은 땀의 양과 비슷할 것 같았다.

    어렵사리 그 아이를 뉘일 자리를 만들었다.
    이제 옮겨와야 할텐데 어떻게 해야할까?
    손으로 안아 옮길 용기는 차마 나지 않았다.
    궁리 끝에 넓은 판에 겨우 옮겨 실어 날랐다.

    구덩이에 넣고 흙을 조금씩 부었다.
    모습이 점점 사라져가는 만큼 미안한 마음도 커졌다.

     

    이렇게 밖에 해 줄 수 없어서 미안하다.
    부디 무지개 너머 다른 세상에서는 건강히 오래 오래 살아라.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

    오늘도 마당에서는 고양이들이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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