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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나가다가
    여행/코타키나발루 2016 2017. 7. 2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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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로를 가운데를 두고 양쪽으로 세 개의 좌석이 늘어선

    작은 비행기. 좌석 간격도 좁고 모니터도 없으며 

    기내식이라 부르기에는 단출하기 이를 때 없는 

    도시락이 제공되는 저비용 항공사의 비행기를 타고

    코타 키나발루로 향하고 있다.


    저가로 항공권을 구매했으니 다 감당해야 할 것이며

    감내할 마음으로 탑승을 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공교롭게도 2년전 세부에 갈 때도 진에어를 이용했다.


    이코노미 좌석 밖에 없는, 이런 보잘 것 없는 

    비행기에는 못돼먹은 그룹 오너 일가가 탈 일이 

    없을테니 차라리 그 편으로는 나은 일인가?

    잡념과 상관 없이 비행기는 어둠 속을 묵묵히 나아간다.




    2열, 4열, 2열의 비행기를 타게 되면 2열에 둘이서

    앉아 그나마 편하게 갈 수 있는데 이 비행기는 3열이다. 

    몇시간 동안 날아가야 하니 화장실 이용 편의를 위해 

    우리는 복도쪽 좌석과 가운데 좌석을 선택했다.

    창가쪽 자리에는 중년의 남성이 앉았다.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제법 흐른 후 그 분이 건네주신

    목캔디를 통해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


    코타 키나발루에서 사업을 하며 살고 계신 교민이었다.

    짧은 시간 잠시 말레이시아에서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다른 나라에서의 삶에 대해서는 

    두가지 마음이 공존하고 있다.

    한번 살아보고 싶다와 모든 것을 맨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기는 너무 힘들지 않을까.


    후자가 조금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어 

    제주도에서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터다.

    하지만 전자를 증폭시킬 무언가가 던져진다면?

    마음을 동하게 할만한 것을 얻기엔 자리도 좁고 

    불편했고 비행기 소음도 간섭이 컸다.

    이동 중의 우연한 만남이라는 상황 또한 

    제대로 된 대화를 하기에는 적당하지 못했다.


    동경은 마음 한 켠에 다시 넣어두었고

    구름 위로는 보름달이 환히 빛나고 있었고

    비행기는 코타 키나발루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별탈 없이 입국 수속을 마치고 무탈하게 택시를 타고 

    예약해 놓은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은 번화가에 있었지만 밤 깊은 시내는 

    깊은 정적에 빠져 있었다.


    체크인을 하고 -둘러볼 것도 없는 전형적인 

    호텔 방이지만- 방을 간단히 살펴보고 다시 나왔다.

    단출한 기내식으로 충분히 채워지지 않은 배를 

    위해 편의점으로 향했다.

    컵라면과 콜라, 망고젤리를 몇개 집어들었다.


    옷장에는 한국에서 입었던 두툼한 외투가 걸려있고 

    에어컨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나오고 있다.

    티비에서는 알아먹을 수 없는 말이 흘러나오고 

    작은 테이블에는 한국에서 구입할 수 없는 

    (혹은 구입하기 힘든) 컵라면이 익고 있다.

    몇시간만의 이런 상황 변화는 반복해서 겪어도 

    늘 신기하기만 하다.







    그럭저럭 느껴지는 포만감에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며 샤워를 했다.

    제주, 인천, 코타 키나발루로 이어지는 긴 여정을 

    마칠 시간이 되었다라고 생각하며 누웠는데 

    마쳐지지가 않았다.


    출입문 쪽 천장에서 나는 소리가 고요한 

    방 안에 퍼졌다. 환풍기 소리 같기도 했다. 

    기계음인지 바람이 흐르는 소리인지 소리의 종류를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 귀에 거슬리는 것은 확실했다.


    둘 다 소리에 예민해서 더 크게 들릴 수도 있겠다 

    싶어 억지로 무시하며 잠을 청했다.

    하지만 의식할수록 소리는 터 크게 들렸고 

    잠에 들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리셉션에 전화를 걸었다.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간도 그렇고 말로만 설명해야하는 

    영어 전화통화도 마뜩찮지만 어쩔 수 없었다.

    3박을 모두 이 호텔에서 묵기로 예약했다. 

    잠을 잘 자야 내일부터의 여행을 잘 즐길 수 있을테니

    부담스러웠지만 수화기를 들 수 밖에 없었다.


    잠시 후 직원 두 명이 올라왔다. 

    한 명은 사무직인 것 같았고 한 명은 기술직인 듯 했다.

    뭔가 확실한 해결을 기대했는데 

    실망스러운 답이 돌아왔다.


    '제거할 수 있는 소리가 아니다. 모든 방이 똑같다.'



    심야시간, 거기다 잘 준비까지 마친 상황.

    다른 숙소를 찾아나서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

    일단 오늘 밤이라도 참고 자는 수 밖에.


    베개를 뒤집어 쓰고 잠이 오기를 기다렸다.

    내일 다시 호텔측에 해결방법이 없는지 확인해 보고

    안되면 다른 호텔로 옮겨야할까?

    뭔가 평화롭게 여행이 시작된다 싶었는데 

    의외의 복병이 발목을 건다.

    뒤척이며 코타 키나발루에서의 첫 날 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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