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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따라 세계여행::303일] 발목을 부여잡고 쿠바로세계여행/중미 2010 2012. 1. 13. 09:00반응형
1 0 . 0 3 . 0 2 . 화 | 멕시코 칸쿤(깐꾼) > 쿠바 아바나 , Mexico Cancun > Cuba Habana
간밤에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2층 침대 2개가 있는 4인실.
제일 먼저 입실한 우리는 1층을 각각 점령했다.
외출하고 돌아오니 배낭 하나가 더 들어와 있었다.
자정을 넘겨 1시 반쯤에 불을 껐다.
그 때까지도 그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 후 문이 열였다. 몇 시인지도 모르겠다.
호텔 객실을 도미토리로 꾸민 것이라 방안에 욕실이 있었다.
술에 취했는지 화장실 문도 닫지 않은 채 소변을 봤다.
그리고는 바로 2층 침대로 올라갔다.
거슬리기는 했지만 다인실인 도미토리를 선택했으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거기까지였으면 그나마 참을만한 것이었다.
코 고는 소리에 잠을 깼다.
지붕이 날아갈 것처럼 코를 골았다.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잠은 점점 더 달아났다.
라니도 깼다. 새벽 4시가 넘어 있었다.
조금 잦아드나 싶어 잠을 청하면 또 다시 데시벨이 높아졌다.
마음 같아선 당장 짐 싸들고 도망치고 싶었다.
.8시 조금 넘어 일어나 샤워하고 호스텔 식당에서 아침식사.
.쿠바 다녀온 후 멕시코시티에서 머물 호스텔 예약.
.11시반 체크아웃.
숙소에서 공항버스가 출발하는 버스터미널까지는 꽤 걸어야했다.
배낭을 메고 걷기엔 더더욱 먼 거리. 하지만 걷기로 했다.
택시 타기엔 가깝고 시내버스는 알아보는 것도 막상 타기도 번거롭다.
터미널에 다 달아 찻길을 건너야했다.
횡단보도로 건너려면 둘러가야했다.
무단횡단이 일상인 곳. 어깨를 누르는 무거운 배낭.
우리도 그냥 찻길을 건너기로 했다.
천천히 건너도 될 것을 라니는 걸음을 빨리 떼었다.
그리고 앞서 가더니 거의 반대편 인도에 닿을 때쯤 갑자기 넘어졌다.
황급히 달려가니 고통스러워하며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 발목은 한 달 반전, 아르헨티나 피츠로이에서 트레킹을 하다 접지른 곳이다.
그동안 매일같이 약 바르고 더운 곳에서도 압박붕대 감고 다니며 조심스럽게 다녔었다.
그리고 겨우 다 나아가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 바로 그 발목을 다시 접지른 것이다. 아뿔사...
더군다나 이번에는 15킬로를 넘나드는 배낭까지 멘 상태, 충격이 더 클 수 밖에 없었다.
라니는 발목을 잡은 채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차도변에서 동양인 둘이 큼직한 배낭을 멘 채 쪼그리고 있으니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 아저씨는 라니의 배낭 내리는 걸 도와줬다.
어느 아저씨는 근처 노점에 타코를 먹다말고 와서는 영어로 근처에 병원이 있다고 알려줬다.
그리고는 직접 병원에 전화를 걸은 후 삼십분 쯤 기다리면 의사가 올 수 있다는데 기다리겠느냐고 물어왔다.
조금 진정한 라니의 발목을 천천히 돌려보니 움직이는데는 이상이 없었다.
그리고 삼십분이나 기다릴 수는 없을 것 같아 괜찮다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다시 노점으로 가서는 비닐봉지에 얼음을 담아왔다.
그라시아스, Gracias, 고맙습니다.
주저 앉은 그 자리에서 겨우 엉덩이를 옮겨 인도에 걸쳤다.
바로 움직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앉아 쉬고 있는데 다른 아저씨가 와서는 말을 건넸다.
영어를 쓰는 것 같기는 한데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버스터미널에 의료시설이 있다는 것 같기도 하고.
성의는 고맙지만 괜찮다는 의사 표시를 했다.
잠시 후 아저씨가 다시 나타났다.
휠체어를 밀고 오는 터미널 직원과 함께.
라니는 휠체어를 타고 터미널 대합실에 옮겨앉았다.
라니의 배낭은 그 아저씨가 들어다 주었다.
너무 고마웠지만 그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보답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맙단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한 둘이 아닌 쏟아진 친절.
쿠바행을 앞두고 라니가 다친 것은 더 없이 당황스럽지만
그들의 마음 씀씀이에 한결 빨리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사고였지만 예상하지 관심과 친절은 감동이었다.
이제 더 이상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던 안티후라민과 압박붕대를 다시 꺼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발목은 괜찮을걸까? 쿠바행은 잠시 미루고 병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봐야할까? 아니면 강행해야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다시 한 번 발목을 조심스럽게 살살 돌려봤다.
손만 대도 엄청난 통증이 온다면 그건 정말 큰 사단이 난 것이겠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렇진 않았다.
좀 더 휴식을 취하고 약 바르고 조심스럽게 다니면 괜찮을 것 같았다.
예정대로 쿠바로 떠나기로 하고 12시 반 출발 공항버스표를 샀다.
공항에서도 휠체어를 얻어 탔다.
공항 건물에서 비행기로 게이트가 바로 연결되지 않아 버스를 타야했다.
그런데 버스 아랫부분에서 발판이 나오는 구조가 아니었다.
공항직원이 버스 뒤편에서 나무판을 꺼내 받혀주었다.
비행기 앞에 도착해서는 내가 부축하며 절뚝거리며 걸어서 내렸다.
살다 살다 참 별 일이 다 있다.
그동안 공항에서 휠체어는 심심찮게 보았지만
그 휠체어를 타게 될 줄은, 뒤에서 밀게 될 줄은 몰랐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드디어 쿠바로 간다.
그런데 쿠바나(Cubana) 항공의 비행기, 겉모양부터 수상쩍다.
너무 낡아보였다. 항공사 이름과 로고는 비행기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멕시코 국기가 붙어 있었다.
실내는 더욱 놀라웠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것 같았다.
좋게 말해 영화에서나 봤던 빈티지한 기내.
중간 중간 꺼진 조명은 괜한 불안감을 일으켰다.
쿠바. 출발부터 색다르다.
색다름은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이어졌다.
입국신고서에 신고품목을 체크하는 부분.
포르노물, 위성통신장비, 기타 무전기 같은 통신 장비 등이 목록에 있었다.
다니다 다니다 이런 건 또 처음 본다.
쿠바로 가고 있음을 살짝 실감했다.
콜라도 색다른 맛을 안겨주었다.
이미 다녀오신 분들의 글을 통해 알고 있었다.
쿠바에는 코카콜라 대신 그들만의 콜라가 있다고.
그래서 그 맛이 궁금했다.
이렇게 일찍 맛보게 될 줄은 몰랐다.
어색한 맛이었다.
여러가지로 쿠바 가는 길은 색다르고도 어색하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Habana)의 호세 마르티(Jose Marti) 국제공항에 내려서도 휠체어를 이용했다.
비행기 문 앞에 휠체어가 대기하고 있었다.
설마 미리 연락 받고 대기한 건 아니겠지?
원래 기본으로 준비되어 있는거겠지?
어쨌든 다행이다.
내가 밀고 가도 되는데 공항 직원인지 항공사 직원인지 알 수 없는
젊은이는 끝까지 자기가 밀겠다단다.
내 배낭은 금방 나왔는데 라니 배낭이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떠나지 않고 휠체어 곁을 떠나지 않는 젊은이.
입국수속을 하고 나와서까지 휠체어를 밀어주는 친절을 선사했다.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덕분에 입국수속을 신속하게 받을 수 있었다.
암튼 감사하다.
쿠바에서는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는 것이 낫다고 해서
ATM을 찾았는데 무슨 이유인지 몇번을 시도해도 돈이 나오지 않았다.
마냥 붙잡고 있을 수 없어 결국 혹시나 해서 준비해 온 멕시코돈을 환전했다.
외국인용, 내국인용의 두가지 화폐가 통용되는 쿠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미리 읽고 왔지만 아직 감이 잘 잡히지는 않는다.
불편해도 버스를 타면 많이 절약할 수 있다고 해서 버스를 탈 계획이었지만
예기치 않은 라니의 발목 접질림으로 인해 택시를 타기로 했다.
25CUC 부르는 것을 흥정해서 23까지 깎았다.
한참을 달렸다.
세상 어디에나 있는 길이고 자동차이고 사람이지만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낯선 길과 자동차와 사람들이 스쳐지나갔다.
남미에서 한동안 함께 여행했던, 먼저 쿠바를 여행했던 연정이 준 론리플래닛 쿠바편을 보니
공항에서 시내까지 25km란다. 낯선 길은 그것보다 더 긴 것 같았다.
숙소 앞에 바로 내리지 못해 조금 걸어야하긴 했지만 그래도 헤매지 않고 금방 찾았다.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읽었던대로 벨을 누르니 2층에서 열쇠가 떨어졌다.
라니의 발목 부상으로 혼자서 큰 배낭 두개를 메고 낑낑대며
2층으로 올라갔는데 오늘은 자리가 없단다. 내일부터 난단다.
해는 져가고 라니는 다리가 불편하고 다른 숙소를 어떻게 알아보나 했는데
다른 숙소를 소개시켜 주겠단다.
똘똘하게 생긴 주인 아주머니의 아들이 앞장섰다.
아들은 자전거에 뒷부분에 2명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을 메단 자전거택시를 잡으려했다.
하지만 여의치 않았다. 겨우 빈 택시를 잡았다.
잠시 아들과 기사 사이에 스페인어가 오갔다.
그리고 택시는 떠나갔다.
짧은 영어와 몸동작으로 해 주는 설명에 따르면
아마도 외국인을 태우면 단속대상이라는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걷기로 했다. 멀진 않단다.
이번에도 아들이 앞장섰다.
절뚝거리는 라니의 다리를 보고 배낭 하나는 아들이 멨다.
휠체어를 밀어주던 공항 직원, 그리고 숙소의 아들.
쿠바 사람들은 대체로 다 친절한건가?
멕시코부터 국경을 넘어 쿠바로까지 이어진 감동의 물결이 카리브해보다도 더 푸르르다.
가로등이 있긴 했지만 충분치 않았고 주택가는 그리 밝지 않았다.
사진으로 봤던 쿠바 특유의 낡은 건물들은 빛을 받지 못하자 더없이 황량해 보였다.
큰 길에서 그리 많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후미진 뒷골목의 스산함이 감돌았다.
여러가지로 편치 않은 지금의 우리 상황 때문에 더욱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아들의 도움으로 오늘의 잠자리는 마련했다.
작은 집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시는 곳.
호텔을 제외한 일반적인 쿠바의 숙소는 '카사(까사 casa)'라는 이름의 이런 민박 형식이라 했다.
계속 이어지는 어색하고 낯선 풍경, 모습, 느낌.
마음이 잔잔해지지 않는다.
그래도 저녁은 먹어야지.
당연히 가정집이니 주방이 있었다.
우리는 멕시코에서 들고온 라면과 햇반이 있다.
하지만 주방을 내어주지 못한다고 했다.
이 집을 찾아 걸어오는 길에 식당의 모습을 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별로 헤매고 싶지 않은 슬램가 분위기의 어두운 밤거리.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그 집에 있던 젊은 사람이 영어를 좀 했다.
차이나타운을 알려주었다. 가이드북을 한 손에 꼭 쥐고 나섰다.
군데 군데는 후레쉬가 필요할 만큼 어두운 길을 걸어 찾아갔다.
지쳐 갈 때쯤 홍등이 밝게 빛나는 차이나타운이 나타났다.
가이드북의 도움을 받아 식당 한 곳에 들어갔다.
다행히 포장도 해준다고 했다.
계란-고기 볶음밥과 스페셜 볶음밥을 주문했다.
냉장고에는 놀라웁게도 코카콜라가 있었다.
여긴 쿠바, 코카콜라는 만나기 힘든 아이템이라 들었는데..
볶음밥 가격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 비싼 콜라지만 같이 달라고 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다른 방법을 찾았겠지만 오늘은 여유가 없다.
몇 푼 아끼는 것, 오늘은 포기다.
어서 밥 들고 가서 배를 채우고 이불을 덮고 눕고 싶을 뿐이다.
주워들은 것은 많아 메뉴판의 가격을 기억해 두었었다.
자기들 마음대로 가격을 올려 계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억 속의 금액보다 많은 돈을 요구했다.
조심스레 따지니 포장비에 세금인지 뭔지 10%가 더 붙은거라 했다.
얼른 수긍하고 보따리를 챙겼다.
한번 걸었던 길이라 덜 낯설긴 했지만 그래도 얼른 숙소에 도착하고 싶은 길을 다시 걸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길인데 이제 막 낯선 나라에 도착한 나에겐 모퉁이 모퉁이가 모두
위험할 것만 같이 느껴지는 길이다.
인상이 그리 좋지 않아 그렇지 않아도 편치 않은 마음을 더 불편하게 했던 주인 할아버지와 할머니.
도시락을 싸들고 오니 숟가락과 포크를 내어주었다.
거실 식탁에서 먹으라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잠깐 쓰면 되는데 먹고 나면 설겆이도 깨끗이 할텐데
주방 잠깐 내어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 속에 쿠바의 볶음밥을 먹어 넘겼다.
그리고 드디어 침대에 몸을 뉘였다.
정말 길고 길었던 하루가 끝났다.
장황하게 쓴 글보다도 더 길게 느껴졌던 하루.
자고 나면, 밝은 쿠바를 만나면 지금 이 불편한 마음이 좀 진정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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