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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프라이빗하우스 마드레


0 9 . 1 1 . 1 4 . 토 | 콜롬비아 칼리(깔리) Colombia Cali


어제 우연히 들어간 일본식품가게에서 알게 된 한국분, 세뇨르 하를 찾아나섰다.
(세뇨르 Señor, 영어의 미스터)

알고 지낸 것도 아니고 얼굴도 모르고 전해 들은 것도 없는, 그야말로 생면부지다.
연결점이라고는 한국사람, 그리고 동성(同姓).
사실 안 찾아가도 그만인 일이다.
우리는 어제의 일로 충분히 특별하고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그 분도 그냥 안 오나 보다 하고 지나가실테다.

하지만 전화 통화를 한 것 그리고 손에 쥐어진, 주소가 적힌 메모지가
왠지 모를 의무감 같은 것을 부여했다.
밤에 국경으로 가는 버스만 타면 될 뿐 할 일도 없다.
칼리에 오면 꼭 가봐야지 하고 마음에 담아두었던 곳도 없고...
시내 구경 할 겸 다녀오면 될 것이다.
미국, 캐나다, 호주 같은 우리보다 나은 환경의 나라가 아닌
이 멀고 먼 남미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한 교포의 생활이 궁금하기도 했다.




숙소에 배낭을 맞겨 놓고 나섰다.
점심시간 전에 일어날 계획으로 조금 서둘렀다.
점심시간에 걸려 괜한 부담을 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걸어가도 될만한 거리였지만 늦지 않으려 택시를 탔다.

가게는 어렵지 않게 찾았다.
건물 안에 동대문의 상가처럼 여러 옷가게가 있었고
그 중 한 곳에 단박에 눈에 띄는 한국분이 계셨다.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로 대충 짐작은 했지만 
생각보다 연세가 많으셨다. 거의 아버지뻘이셨다.

앉아마자 아침은 먹었느냐고 물어보시곤 커피와 치즈로 만든 빵을 사다주셨다.
옷가게 한켠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민 오신 이야기, 우리 여행하는 이야기.
그러는 사이 금방 점심시간이 왔다.
잠깐 인사만 드리고 일어나려 했는데 말이다.

처음 뵙는데다 연세까지 많은 어르신이지만 그다지 거리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부대낌 없이 편하게 대해 주셨다. 
점심 먹고 가라는 권유에 손사래를 치는데 어느새 주문을 하셔버렸다.
점심까지 넙죽 얻어 먹게 되었다.




얼마후 일회용 용기가 차곡차곡 쌓인 하얀 비닐봉지가 배달되어 왔다.
콜롬비아에서의 배달음식, 맛이야 어떻든 간에 맛있는 경험이다.
고수가 들어간 스프, 치킨, 밥, 샐러드, 그리고 과일주스까지 있는 세트 메뉴.
(여기 사람들은 고수를 정말 사랑하는가 보다. 안 들어가는 음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호의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온 것, 일정이 급하지 않으면 댁에서 저녁 먹고 자고 가라신다.
좋은 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호스텔보다는 낫지 않겠냐고 하시면서...

둘 다 '하룻밤만 재워 주십시오', 이런 말을 쉽게 하는 넉살 좋은 성격도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신세 지는 것도 부담스러워 하는 성격이라 넙죽 '그러겠습니다'라고 
하지는 못하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잠시 망설임의 시간을 가졌다.
어제 전화통화할 때 찾아오라고 하실 때도 그냥 지나가는 말씀으로 하신게 아니 듯
이번에도 의례적인 인사치레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원래 칼리는 스치듯 지나갈 곳이었다.
장거리 이동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들렀고 하루만 자고 떠날 곳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인연으로 짧게 끝날 칼리와의 만남이 조금 더 길어졌다.




.가게 문 닫는 시간에 맞춰 짐 가지고 다시 찾아가기로 하고 숙소로 귀환.
.숙소로 돌아갈 때는 걸어가며 시내구경.
.숙소 근처의 후안 발데스(Juan Valdez)에서 시원하게 냉커피.
.3시반 쯤 숙소 복귀, 인터넷 검색, 가이드북 탐독.


곧 있으면 에콰도르에 간다.
에콰도르에는 갈라파고스가 있다.
살아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라 불리는 그 곳에서 라니는 다이빙을 하고 싶어했다.
이집트에서 다이빙을 배울 때 한 다이빙이 마지막이었다.
오래된 것도 오래된 것이지만 다른 곳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환경을 가진
갈라파고스에서의 다이빙을 갈구했다.

하지만 비용도 많이 드는데다 섬의 날씨를 보장 받을 수 없는게 문제였다.
이스터섬에서 그 변덕스럽고 당황스러운 날씨를 이미 경험했던 터라 고민이 더 컸다.
오늘 라니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아직 미천한 다이빙 경험. 좀 더 능숙한 다이버가 되어 갈라파고스를 찾기로 했다.
지금이 좋은 기회이고 다음을 기약하기엔 멀고 먼 곳이지만
작은 꿈을 남겨 놓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맨 몸으로 걷기엔 괜찮았지만 배낭을 메고 하선생님의 가게까지 걸어가기엔 무리가 따를 것 같았다.
하지만 걸었다. 우린 아직 젊기에~
역시 베낭을 멘 상태에서는 먼 길이었다.
중간쯤에 있는 공원에서 배낭을 내리고 한 번 쉬었지만 늦지 않게 가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같이 셔터를 내리고 하선생님댁으로 향했다.
가게에서 선생님댁까지도 베낭을 메고 가기에는 조금 힘이 부치는 거리였다.
선생님 발걸음은 또 어찌나 빠르신지. 베낭 메고 쫓아가느라 진땀 좀 흘렸다.

사모님은 다른 일 때문에 몇 일 집을 비우시고 안 계셨다.
아내가 비운 집에 홀로 남은 남자의 밥상은 비단 하선생님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조촐하기 마련이다.
사모님이 미리 마련해 놓고 가셨을 밑반찬에 계란국을 끓여 저녁상을 차렸다.
하지만 우리에겐 위대한 밥상이다.
이게 바로 집밥 아닌가.

하선생님은 70년대 말에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오셨단다.
그 곳에서 쭉 생활하시다 콜롬비아에는 10여년 전쯤 오셨단다.
30년 이민사, 드라마가 따로 없다.
그저 대단하다는 말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살면서 혹은 여행하면서 겪은 어려움은
땅 설고 물 설고 말 설은 이 곳 남미에서 마주하셨던 고초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할 것 같았다.

남미, 그리고 콜롬비아 이야기로 빠르게 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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