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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프라이빗하우스 마드레


0 9 . 1 1 . 0 4 . 수 | 콜롬비아 카르타헤나(까르따헤나) Colombia Cartagena


어리바리 세계여행을 하겠다고 한국을 떠난지 딱 6개월이 지났다.
그리고 오늘은 결혼기념일이다.

둘 사이에 딱히 연관성은 없지만 어쨌든 기념할 일이 두 가지가 겹쳤다.
여러가지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지만 여섯달을 여행해 남미까지 왔다.
처음으로 해외에서 맞는 결혼기념일이다.

언제나 특별했으면 하는 결혼기념일.
이번에는 외국, 그것도 남미, 카리브해에서 맞는 것만으로도 특별하다.
오늘은 신시가지인 보카그란데(보까그란데 Bocagrande)로 가 카리브해에 발을 담그기로 했다.


우리의 분식집 같은 분위기였다.

우리의 만두와 비슷한 엠파나다(엠빠나다 Empanada). 양념도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바닷물에 발을 적셨다.
남미에 오기 전에 지중해를 따라 움직였기 때문에 그동안 바다는 심심찮게 봤었다. 
해변도 니스, 바르셀로나, 그리고 바로 지난 달 갔던 이스터섬에서 만났지만 발을 담그지는 않았었다.
되짚어 보니 7월에 갔었던 이집트 후루가다가 마지막이었다. 

바닷물과 가는 모래가 발을 간지럽히는 느낌이 새롭다.
그런데 발을 쓸고 지나가는 바닷물을 보고 있는데 그 색이 영 못마땅하다.
분명 저멀리 보이는 바다는 푸른색인데 해변가는 흙탕물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백사장이 아니라 흑사장이었다. 검은 모래 해변은 처음이다.
특이하긴 했지만 검은 모래는 바다색의 바꿔놓았다.
분명 아름다운 바다가 맞는데 파도에 일어나는 검은 모래 때문에 탁하게 보였다.

그래도 이 얼마만의 촉촉한 시간인가?
거기다 여긴 카리브해이고 오늘은 결혼기념일 아닌가?




상큼한 기분으로 걷고 있는데 갑자기 오른쪽 쪼리,
엄지와 검지발가락 사이의 앞 고정부분이 툭 끊어졌다.
한국에서 가지고 나온 쪼리는 달랑거리는게 보여
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상했었고 그래서 미리 새 쪼리를 마련했었다.
그게 대략 3개월전 터키 이스탄불에서의 일이었다.

난감했다. 일단 맨발로 큰 길쪽으로 걸어나갔다.
햇빛에 한껏 달아오른 보도블럭과 아스팔트가 발바닥을 괴롭혔다.
큰 길에 닿자마자 쪼리를 팔고 있는 노점을 만났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거기 있었다.

딱히 마음에 드는 것은 없지만 당장 급하니 선택을 해야했다.
콜롬비아 국기에 들어 있는 색 중 하나인 노란색의 쪼리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 눈에 띄는, 한편으로 부담스러운 색이지만, 왠지 이런 날씨에는
원색인 노란색이 더없이 어울릴 것 같았다.

흑인에 가까운 까무잡잡한 청년은 영어를 할 줄 알았다.

"얼마?"
"25,000페소."
"에이~"
살펴보던 샌들을 내려놓았다.

"그럼, 17,000페소."
주저주저 하자 그가 물었다.
"얼마면 살껀데?" 
참 황당하고도 당황스러운 질문이다.
이집트의 슈퍼에서 콜라를 살 때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었다.

"10,000페소."
"15,000에 줄께. 사."
돌아서니 그가 붙잡았다.

"그래, 10,000페소(약 6천원)만 줘."
체념한 듯 그가 말했다.

우리가 너무한걸까?
설마 밑지고 팔진 않았겠지.
우릴 너무 얕본걸까?
처음 부른 가격의 절반도 안 되는 돈에 팔다니.




샛노란 쪼리를 신고 몇 걸음을 걷고 나서 조금 후회도 되었다.
너무 눈에 띄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 쪼리만 쳐다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로...
어색한 발걸음으로 큰 길을 걷는데 커피전문점 후안 발데스(Juan Valdez)가 나타났다.

그렇지 않아도 목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무선인터넷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식도가 얼얼할 정도로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받아든 후 무선인터넷을 쓸 수 있는지 물었다.
30분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을 건네주었다. (쿠폰)

사용시간에 제한이 있는 것이 아쉬웠지만
여행자금이 들어있는 통장에서 인출용 통장으로 당장 쓸 경비를
이체하는데는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었다.
잔고가 부족해 돈을 뽑지 못했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아이스커피로 땀을 식힌 후 
현금인출기가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블록버스터'라는 이름의 비디오대여점으로 다시 향했다.






대여점의 직원과 겸연쩍은 눈인사를 나누고 현금인출기 앞에 섰다.
진행이 척척되었다. 당연한 것인데 괜히 고맙다.
트르륵, 돈을 세는 소리가 반가웠다.

그런데 돈이 나오지 않는다.
시내의 씨티은행 지점에서는 아예 고장이어서 못 뽑았었기에 짜증이 훅 밀려왔다. 
그나마 처음에 카드인식 후 카드를 먼저 돌려받는 시스템이어서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돈도 못 뽑고 카드까지 먹힐 뻔 했다.

다시 해변으로 나갔다.
바닷바람에 데워진 머리를 식혔다.














아르헨티나에서 혼자 여행을 왔다는 아저씨와 서로 사진 찍어주기를 하면서
해변 끝까지 걸었다. 이런 저런 삐끼들이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것처럼
말을 걸어왔지만 귀찮게 굴지는 않았다. 관심 없다는 표현 한번에
모두 쉽게 떨어졌다.

해변의 끝에 있는 힐튼호텔에 들어갔다.
결혼기념일을 기념해 근사한 저녁을 먹을 참이었다.
하지만 식당에 들어갈 수 없었다.
너무 빨리 온 것이다.

나름 격 있는 레스토랑이라고 식사시간에만 영업을 하고 있었다.
점심을 너무 간단하게 먹었던 탓에 얼른 밥을 먹고 싶은데 또 헛튼 발길을 돌려야했다.
택시를 타고 숙소가 있는 동네로 돌아왔다.




La Casa de Socorro.


우리 남미여행의 길잡이, 풋프린트(Footprint)는 식당 가격대를 포크갯수로 표시한다.
포크 하나는 저렴한 축에 드는 식당이고 포크 세개는 고급식당이다.
포크 두세개짜리는 거의 거들떠도 보지 않는데 오늘은 날이 날인만큼
포크 갯수에 상관하지 않고 강력추천이라고 해 놓은 식당을 찾아갔다.
훌륭한 캐러비안 푸드를 맛 볼 수 있다고 했다.

대단한 상차림은 아니었지만 식당 분위기도 괜찮고 맛도 있었다.
본격적인 저녁시간 전에 간터라 손님도 별로 없었다.
결혼기념일을 자축하기엔 적당한 공간이었고 시간이었다.








밤의 카르타헤나는 어떤지 궁금하지만 나가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우리끼리만 남미의 밤거리에 나가는 것은 주저하게 된다.

침대에 누워 천장에 닿게 높게 달린 LG 텔레비전을 켰다.
스페인어만 주절주절 나오는 채널을 넋나간 채 돌려댔다.
그러다 손가락을 멈추었다.

ESPN채널이었고 야구경기가 중계중이었다.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였다.
그리고 낯익은 얼굴이 화면에 잡혔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박찬호였다.

15년전 그가 엘에이 다저스의 유니폼을 입고 등판하는 날이면
텔레비전이 있는 학생식당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그의 공 하나하나에 모두가 집중하고 환호와 탄성을 번갈아가며 쏟아내었다.
그는 그야말로 영웅이었다.

많은 세월이 흐르고 후배들은 하나둘 메이저리그에서 사라졌지만
그는 고비를 넘기고 넘기며 여전히 마운드에 우뚝 서 있다. 
그것도 월드시리즈에. 그의 첫번째 월드시리즈에.

그가 꼭 우승반지를 낄 수 있길 기원했다.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해가 갈수록 우승반지와는 거리가 멀어지니
이렇게 기회가 왔을 때 꼭 우승하길 기원했다.

스크라이크가 꽂히고 삼진을 잡고 아웃카운트가 늘어갈 때마다
우리 주먹에도 힘이 들어갔다.
비록 중간계투지만 맡은 바 임무에 충실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샴페인 세례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우승을 놓친 것은 안타까웠지만 반가운 시간이었다.
티비로 보는 것은 똑같지만 한국보다 훨씬 가까운 곳이라
시간대도 비슷한 곳이라 그만큼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같은 생방송이지만 한국에서 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나저나,
갑자기 잠실구장의 종이그릇에 담아 파는 우동이 생각난다.

후루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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