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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따라 세계여행::260일]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 둘째 날
    세계여행/남미 2010 2011. 9. 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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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0 . 0 1 . 1 8 . 월 |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또레스 델 파이네) Chile Torres del Paine


    밤새 강풍이 몰아쳤다.
    얼마나 세게 불던지 텐트 안의 사람과 짐까지 모두
    바람에 실려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불어닥쳤다.

    거기다 비까지 내렸다.
    퍼덕거리는 텐트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까지 겹쳐졌다.
    심난한 밤이었다.

    그 덕에 7시에 일어나기로 한 약속은 다섯명 모두에 의해 깨졌다.
    몸은 찌뿌둥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계속 게으름을 피우기에는 오늘 걸어야 할 길도 만만치 않게 길다.
    정신을 차려야했다.



    아침으로 라면을 끓였다.
    야영장에서의 라면은 아침에도 꿀맛이다.
    어제 먹고 남은 밥을 말아 헤치웠다.
    그리고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어제는 잘 안나왔던 샤워장의 따뜻한 물이 오늘은 잘 나왔다.
    개운하게 씻고 짐정리를 하고 텐트를 걷었다.

    쌀이 줄었고 라면이 줄었고 계란도 몇개 없어졌고 가스도 좀 썼고...
    어깨에 짊어질 무게가 조금 줄어든 것을 위안으로 삼고 배낭을 멨다.

    9시40분. 계획했던 것보다 많이 늦었지만 어쨌든 출발이다.


    지도 출처, torres-del-paine.org


    오늘 트레킹 2일차에 걸을 코스는

    파이네 그란데 캠핑장(Refugio Paine Grande)에서
    이탈리아노 캠핑장(Campamento Italiano)까지 가서 배낭을 내려놓는다.

    프란세스 계곡(Valle del Frances)를 따라 걸어올라간다.
    브리타니코 캠핑장(Campamento Britanico)를 지나 전망대에 도착한다.

    다시 내려와 이탈리아노 캠핑장에서 배낭을 메고
    쿠에르노 캠핑장(Campamento Cuernos)까지 간다.




    어제 그레이호수와는 달리 옥색 찬란한 페오에(뻬오에 Pehoe)호수.



    설정 자세 잡은 상학.


    네 발로 걷는 라니.


    아침에 일어나 라니의 발목을 확인해 보니 조금 부어있었다.
    접지른지 얼마 되지도 않는 발목으로 괜히 온 건가 싶기도 하고
    이 상태로 계속 무리하게 걸어도 되는걸까,
    트레킹 끝나고 나면 더 악화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걱정스럽다.

    그리고 안스럽다.
    이미 시작된 트레킹, 바꿀 수 없는 불편한 대여 등산화.
    악조건 속에 걷는 그 뒷모습이.




    이제 불과 30분 걸었을 뿐이데 오르막이어서 힘들었다.


    잠깐 쉬었다 다시 출발.


    웅장함을 넘어선 봉우리들.


    파란 하늘 아래 햇빛을 제대로 받았으면 더 멋졌을텐데.


    연정, 상학, 라니가 앞서 가고 있다. 우린 자연의 미세한 부분일 뿐이란 걸 새삼 느낀다.


    흩뿌리는 비가 힘든 라니의 발걸음을 더욱 더디게 만들었다.


    영험할 것 같은 산의 기운을 받으며 꿋꿋하게 걷는다.




    출발한지 2시간 반만에 이탈리아노 캠핑장에 도착했다.
    맨몸도 아닌 그 무거운 짐을 메고
    평탄한 길도 아닌 오르내리막 길을 걷다 보니 완전 지쳐버렸다.

    그냥 여기 캠핑장에서 텐트 치고 드러누웠으면 좋겠다는 생각 한가득이다.
    하지만 오늘 덜 걸으면 내일 더 걸어야한다.
    아침에 준비해 온 샌드위치를 먹으며 힘을 냈다.

    발목이 좋지 않은 라니와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학은 프란세스 계곡을 따라
    걷고 오는 길을 포기하고 곧장 오늘의 목적지 쿠에르노 캠핑장에 가기로 했다.

    연정과 준형, 그리고 나는 이탈리아노 캠핑장에 배낭을 내려놓고
    프란세스 계곡을 지나 전망대까지 다녀오기로 하고 반대편 길로 떠났다.
    상학이 같이 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돼 천천히 조심해서 걸으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캠핑장을 떠난 후 한동안은 걸을만했다.


    하지만 조금 더 올라가니 구름 가득이 가득했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바람까지 심하게 불었다.


    거기다 어제와 오늘 오전에 걸었던 길처럼 오솔길이 나 있는 것이 아니라 바위들을 타고 올라가는 길이었다.



    비가 제법 내렸고 거기다 바람이 세차게 부니 추워졌다. 물에 젖은 바위를 오르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20대 초반의 준형과 연정은 씩씩하게 잘 올라갔고 점점 멀어졌다.
    안경에는 빗방울이 젖어들고 얼굴을 적신 빗물이 강한 바람에 증발될 때마다 닭살이 돋았다.
    다음 캠핑장으로 먼저 떠나간 라니도 자꾸 신경 쓰인다.
    안 되겠다. "얘들아, 나 먼저 내려갈께~"


    중도 포기로 'W'코스는 완성되지 못하게 되었다.
    가보지 못하는 곳에 대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야 하는 그런 기분은 아니었다.
    어서 이 모진 비바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미끄러운 바위들을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캠핑장이 가까워지자 비는 점점 사라졌다.
    배낭을 놓아둔 이탈리아노 캠핑장의 바닥은 전혀 젖어 있지 않았다.
    얼마 안 되는 거리지만 확연히 다른 날씨에 놀라며 내 배낭을 찾았다.




    노르덴스크홀드 호수(Lago Nordenskjold).




    걷다보니 멀리서 보이던 옥색의 호수가 눈 앞에 나타났다.
    고운 자갈이 깔린 호수. 지금까지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풍경.
    그 풍경 속에 나 혼자 있었다. 넋을 잃고 멍하니 서서 그냥 바라보고 싶었다.
    납작하게 생긴 조약돌을 하나 골라주워 비현실적인 호수에 물수제비뜨기를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놈의 바람이 다 앗아갔다.
    돌을 던졌다가는 바람에 그 돌이 다시 돌아 날아올 것 같을 정도로 심했다.
    실제로 호수면 위로는 물보라가 일어나 하늘로 솟구쳤다.
    겨우 몸을 가누며 다시 산쪽으로 이어지는 길로 접어들었다.

    다시 속도를 내었다.








    오늘의 목적지, 쿠에르노 캠핑장에 다 이르러서야 상학과 라니를 따라잡았다.
    여전히 불편해 보였지만 라니는 꿋꿋이 잘 걷고 있었다.
    보이지 않아 심난했던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배낭을 내팽개치고 일단 산장으로 들어갔다.
    힘들게 마련했을 인간의 영역은 안락했다.
    캠핑비를 치르고 의자에 앉아 지친 심신을 달랬다.





    차가 다닐 수 없는 곳. 콜라 한 캔의 가격은 무려 4,600원.


    정신을 차리고 산장에서 나와 텐트 칠 곳을 물색했다.
    일단 하나만 치고 연정과 준형이 오기를 기다리며 잠을 청했다.
    어제 22킬로의 트레킹으로 무척 피곤했고 비와 바람 때문에 텐트에서의 첫밤을 많이 설쳤고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무척 피곤했던 탓에 잠이 솔솔 찾아들었다.
    세상 모르고 자고 있을 때 준형과 연정이 도착했다.



    어제 묵었던 파이네 그란데 캠핑장에는 취사 건물이 따로 있었는데 이 캠핑장에는 그런 건물이 없었다.
    산장 안에서 밥을 먹을 순 있지만 조리는 밖에서 해야 했다.
    그냥 텐트에서 해 먹기로 했다.

    텐트 내부와 외부천막 사이의 공간에서 버너를 켰다.
    밥을 짓고, 계란찜을 만들었다.
    상학이 트레킹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즉석미역국을 기증했고
    준형도 귀한 깻잎 통조림을 이번 트레킹을 위해 기꺼이 풀었다.

    하찮을수도 있는 음식이 상황에 따라서는 고귀한 밥상이 된다.
    특히 통조림 깻잎은 인기 폭발이었다. 그렇게 맛있을수가 없었다.
    깻잎이 다 사라지고 난 뒤 캔에 남아있는 약간의 국물까지도 모두가 탐내했다.

    단순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 가위바위보를 하기로 했다.
    한 사람에게 몰아주기. 짧은 순간에 환호와 탄식이 오갔다.
    유치하지만 그런 재미로 고단함을 달랬다.

    길게 느껴졌던 트레킹도 어느새 절반을 넘어섰다.



    열악환경에서도 챙겨먹은 후식.
    냄비가 부족했고 야외에 설치된 싱크대에서 설겆이 해오기도 귀찮아 밥 지은 냄비에 물 끓이고 가루우유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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