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해따라 세계여행::242일] 해외에서의 첫 송구영신
    세계여행/남미 2009 2011. 7. 31. 10:00
    반응형


    0 9 . 1 2 . 3 1 . 목 | 칠레 발디비아 Chile Valdivia


    12월31일이다.
    해외에서 처음으로 새해를 맞이하게 됐다.

    비록 세계 각지의 특파원들이 나와 새해맞이 소식을 전하는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벌써 수십번도 더 맞았던 새해라 딱히 새로울 것도 많지 않지만,
    어쨌든 지구 반대편의 칠레에서 보내고 새로 맞는 2009년과 2010년은
    세계여행과 맞물려 잊혀지지 않을 년들이 될 것 같다.



    부시시한 모습으로 숙소에서 주는 아침을 먹은 후 계속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잔뜩 흐린데다 비가 내리고 말기를 반복하는 스산한 날씨가 차분하게 12월31일을 보내게 했다.

    점심으로 연어를 잔뜩 넣은 스파게티를 해 먹고 다시 방에 콕 쳐박혔다.
    남미 대륙 남단으로의 여행일정을 고민했다.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오래 타야하는 버스의 압박 속에
    자주 있지도 않고 비싼 비행편을 인터넷으로 조회하며 골머리를 앓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저녁 먹기 얼마전 주방에 다녀온 라니가
    아주 중요한 정보를 가져왔다는 듯 얘기했다.
    오늘 밤 파티에 쓸 연어에 고수를 잔뜩 얹어놓았다는 것.
    점심 먹을 때 숙소 주인장으로부터 오늘 밤 연어바베큐 파티가 있을 것이라는 언질을 받았었다.

    연짱으로 연어를 먹는거야 그래도 다른 방식으로 요리하니 감수하겠는데 왜 하필 고수야... 젠장.
    남미에 온 이후로 잊을만하면 불가항력적으로 맛보아야했던 고수,
    하지만 절대 익숙해질 수 없었던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는 맛과 향을 내는 고수.



    라 세레나(La Serena)에서 머물 때 가졌던 숙소 주최 크리스마스 파티의 좋은 추억 때문에
    살짝 기대했었던 새해맞이 파티였다. 그깟 고수 때문에 파티 초대를 고사하냐고
    나무랄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에게 고수는 파티의 즐거움을 상당량 날려버릴 수 있는 존재였다.
    언어의 한계가 있는 우리에게 파티에서 먹는 즐거움이 차지하는 비중은 꽤 크므로...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주방에서 분주하게 음식을 준비하는 스탭에게 우리는 파티에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전하고
    계획했던 대로 소고기 스테이크 요리에 돌입했다.

    그런데 고기가 후라이팬에서 지글지글 익어갈 무렵 우리는 아주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열심히 스테이크를 만들고 있는 라니 옆에서 그 문제의 고수가 끼얹어진 연어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숙소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혹시 이거 고수 맞아요?"
    "이건 고수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고수가 아니라 파슬리이에요."

    파슬리.
    파슬리.
    파슬리.



    이미 지나간 버스요, 엎어진 물이다.
    다 익어가는 스테이크와 채소를 포기할 수도 없고
    우리 음식으로 배 다 채우고 파티에 참여하기도 뭣하고
    무엇보다 파티에 빠지겠다고 했다가 다시 끼워달라고 하기는 우리 성격에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마련한 스테이크.
    맛있게 보였지만 왠지 씁쓸했다.
    먹을 자리가 없어 더 그랬다.

    거실의 테이블을 붙여 파티용 보를 깔고 포크와 나이프가 가지런히 준비되어 있었다.
    괜히 거기 앉아서 먹는 것이 미안해 뒷마당으로 나갔다.
    하지만 비가 와서 뒷마당의 식탁과 의자는 다 젖어 있었다.

    난감한 상황의 연속에 몸 둘바를 모르겠다.
    음식을 들고 방황하는 우리를 본 숙소 스탭의 배려로
    바로 그 파티용으로 준비된 테이블 한켠에 앉아 스테이크를 썰었다. 



    숙소에서 준비한 파티 음식 중 하나.


    숙소 2층의 거실에서는 조촐한 파티가 시작된 가운데
    우리는 3층의 방에서 1박2일을 보며 어서 자정이 오기를 기다렸다.
    어제 돌아다니다 강가에서 불꽃놀이를 한다는 포스터를 봤었다.
    화려한 불꽃들이 뭔가 어긋한 12월31일을 축복해 주기를 바랐다.

    11시 반. 와인잔이 부딪히는 소리를 뒤로 하고 숙소를 나섰다.
    하지만 거리는 너무 횡했다.
    평소 아무리 상점들이 일찍 문을 닫는다고 해도
    이제 곧 새해를 맞을 시간인데 이건 좀 너무하단 생각이 들었다.
    정말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녹색과 적색으로 번갈아가며 바뀌는 신호등이 공허하게 보였다.

    애써 마음을 달래며 꾸역꾸역 강가로 걸어갔다.
    강이 가까워지자 그제서야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변에는 제법 많은 차들이 줄지어 서 있고
    제법 많은 사람들이 비를 피해 나무 아래에 모여 있었다.



    보신각종이 있는 종로거리에 모인 인파에는 비할 바 아니지만
    어쨌든 옹기종기 모여든 사람들을 보니 그래도 연말연시 분위기가 났다.
    이제 비가 그치고 불꽃만 터져주면 되는 것이다.

    조금씩 2010년이 다가왔다.
    5,4,3,2,1! 땡. 자정이 되었지만, 축포는 터지지 않았다.
    불꽃이 터지는 소리 대신 여기저기서 샴페인 따는 소리, 그리고 샴페인잔이 부딪히는 소리만 요란했다.
    그리고 지나가는 몇몇 차들이 경적을 울려대는 것이 전부였다.

    비가 와서 화약이 잘 안 터진걸까? 그래도 뭔가 있지 않을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우산을 받쳐들고 잠시동안 기다렸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전부였고 끝이었다.

    허망한 마음에 괜히 강변 카지노를 잠시 기웃거리다
    쓸쓸한 발걸음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는 여전히 파티중이었다.
    소심한 성격 탓에 불쑥 그들 틈에 끼어들지 못하고
    멋적게 시선을 피하며 3층에 있는 우리방으로 올라왔다.


    외국에서 처음 맞아보는 새해라는 특별함이 어느새 헛헛함으로 변했다.
    2010년이 어긋남의 연속 속에 밝아왔다.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