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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따라 세계여행::193일] 커피농장이 담긴 커피 한 잔
    세계여행/남미 2009 2011. 4. 1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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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9 . 1 1 . 1 2 . 목 | 콜롬비아 살렌토(살렌또) Colombia Salento


    유리창 없이 나무로만 된, 밖이 전혀 보이지 않는 창문 때문에
    더없이 화창한 날인줄도 모르고 침대에서 꾸물거렸다.

    주방에는 식빵, 계란, 커피, 우유 등이 마련되어 있었다.
    계란으로 스크램블을 만들고 식빵과 커피를 곁들여 아침식사를 했다.
    아직 해가 들어오지 않는 주방은 약간 서늘하지만 창 밖 풍경은 따사로웠다.

    커피농장 방문이 기대가 된다.






    무조건 직진만 하면 된다는 숙소 옆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띄엄띄엄 커피농장쪽으로 가는 교통편이 있긴 했지만 걷기로 했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길도 좋다. 

    마을을 벗어나면서부터는 비포장길이 시작되었다.
    전봇대보다 더 크게 자란 나무들이 늘어선 길,
    오랜만에 걷는 바삭거리는 흙길은 한적하고 상쾌했다.
    산림이 울창하지는 않지만 갖은 녹색들로 푸르른 계곡은 청량했다.








    한참 걸어왔는데 얼마를 더 가야하나 궁금해 할 때쯤 나타난 표지판. 800미터만 더 가면 된다고...





    커피농장 El Ocaso 입구.


    숙소에서 얘기해준대로 딱 1시간만에 도착했다.
    반가운 마음으로 입구로 들어섰다.
    길 양쪽으로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커피나무들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한참을 걸어 들어간 후에야 2층집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어디선가 시커먼 개 몇마리가 달려나왔다.
    미친듯이 짖어댔다. 손님맞이 치고는 꽤 과격했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 울타리가 있는 것이 천만다행으로 여겨졌다.
    문이 열리기만 하면 바로 뛰어올라 덥치겠다는 기세였다. 
    진정시키보려고 했지만 스페인말만 알아듣는다는 듯 쉬지 않고 짖어댔다.

    그렇게 진땀 흐르는 사이에 저 멀리 집에서 아주머니 한분이 나타나셨다.
    우리를 보더니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어디론가 전화를 하면서 아주머니는 금방 집으로 사라졌다.
    다시 개들과 우리만 남았다. 주인에 대한 충성심인지 오늘 맘 상한 일이 있었는지 짖음은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개들 앞에 뻘쭘하게 서 있는 시간은 꽤 더디게 흘렀다.
    개들은 목청이 떨어지고 우리는 귀청이 떨어질 것 같아질 때 쯤 아저씨 한 분이 나타나셨다.
    하얀 이를 드러내고 짖어대던 개들은 아저씨를 보자마자 순한 양으로 돌변했다.

    아저씨도 순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첫인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나긋한 말투로 인사를 건네왔고 말씀을 이어가셨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멍하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퇴비.


    아저씨와 우리 사이에는 거대한 벽이 하나 서 있었다. 언어의 장벽.
    말이 안 통하니 이 아저씨가 안내를 해 주실 분인지 아니면 다른 분이 오실지 조차 알 수 없었다.
    그건 몸짓언어로도 전달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영어를 전혀 못하시니 영어가 가능하신 분이 있는지 묻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한동안 어색한 미소만 오고 간 후
    보고타의 태양여관에서 받은 스페인어 단어장을 꺼냈다.
    참 억지스러운 의사소통이었지만 어쨌든 우리는 이 분이
    커피농장을 안내해 주실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퇴비장인 듯한 곳에서부터 시작을 했다.
    우리의 스페인어 능력이 아저씨의 영어 능력과
    비슷함을 깨달으신 아저씨는 짤막한 설명만 내어놓으셨다.
    물론 우리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대충 짐작만 할 뿐이었다. 
    쌓여진 것들을 보니 아마도 건강하게 만들어진 퇴비로 커피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라는 말씀인 것 같았다.





    곧 이어 커피나무가 울창한 곳으로 들어섰다.
    농장 입구에서 본 작은 나무들과 달리 엄청 컸다.
    가지에는 앙증맞게 자란 커피열매들이 마디마디마다 촘촘히 열려 있었다.





    커피꽃도 볼 수 있었다. 
    늘 진한 갈색의 커피만 보다 연한 연두빛이 도는 흰 꽃을 보니 느낌이 묘했다.
    저렇게 보드랍고 연한 꽃에서 단단한 열매가 맺힌다는 건 언제 보아도 신기하기만하다.






    노랗고 빨갛게 익어 수확을 기다리는 열매들도 있었다. 
    아저씨가 몇 개 따서 라니 손에 놓아주었다.
    그 중에 하나는 까서 주셨다.
    커피 생두가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



    잘 살펴보라고 가지를 잡아주시는 아저씨.
    스페인어를 배우지 않고 온 것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었다.
    원어민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더듬더듬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서글서글한 눈매의 아저씨와 좀 더 친해지고 커피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텐데...





    한 켠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 커피나무들.
    줄 맞춰 서 있는 유치원생들 같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아이들은 귀엽다.



    커피열매의 껍질을 까는 기계.
    요즘은 기계로 하지만 옛날에는 손으로 돌려가며 깠나 보다.
    왠지 손으로 돌려서 까면 더 구수한 콩이 나올 것 같다.








    껍질을 깐 커피열매를 세척하고 선별하는 곳.
    작업을 하고 있진 않았다.
    세척과정도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텅 빈 욕조가 아쉬움을 살짝 젖었다.



    불량커피 식별법. 번역해 보니 대충 그런 뜻인 듯.




    세척하고 선별한 커피를 건조하는 비닐하우스.



    바짝 말린 커피.



    얇은 껍질을 벗겨내니 우리에게 익숙한 원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농장을 다 둘러보고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치장된 2층집으로 향했다.
    1층 발코니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있으니 아저씨께서 볶은 원두를 가지고 오셨다.

    여기 오기 전에 찾아본, 먼저 커피농장을 다녀온 분들의 블로그에는
    바구니를 메고 커피 따는 체험을 한 이야기도 있고,
    수확한 열매를 처리하는 과정까지 모두 본 이야기도 있었다.

    반면 이 곳에서는 작업장도 텅 비어있고 커피를 볶는 것도 보여주지 않고
    이미 볶아 놓은 것을 덜렁 가지고 나와 적잖이 실망을 했다.

    그런데 볶은 커피가 든 통을 여는 순간 진한 커피향이 코 안 가득 밀려와
    머리 속까지 파고 들었고 언짢은 마음도 많이 누그러졌다.




    향긋한 그 볶은 원두를 우리 앞에서 바로 갈아서 내려주려나 했다.
    다른 농장을 다녀온 대부분의 분들이 그렇게 해서 커피 한 잔을 대접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아저씨는 원두가 든 통을 거두어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곧이어 아주머니가 커피 두 잔을 내어 오셨다.

    물론 방금 그 원두로 내려온 커피겠지만 끝내 또 실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저씨의 외모만큼이나 자상한 체험을 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래도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었다.
    스페인어를 할 줄 몰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진한 커피를 들이킨 후에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혀를 감싸고 도는 그윽한 맛은 원두커피를 좋아하는 라니는 물론이고
    믹스커피에 길들여진 나를 감동시키기에도 충분했다.

    맛이 아니라 분위기에 더 젖어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입시 준비를 할 때부터 오랜 세월동안 그렇게 커피를 마셔댔지만
    커피농장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장면은 상상해 본 적이 없다.

    방금 충만했던 실망은 온데 간데 없고 우리는 이 곳에서 생산한 커피 한 봉지를 구입했다.
    완전 밀봉된 포장인데도 진한 향이 뚫고 나왔다.

    아쉬운 부분도 많았지만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었다.
    커피농장이 담긴 커피 한 잔의 기억은 오래 갈 것 같다.




    * 커피농장 견학 - 5,000페소 (약 3,000원. 커피 1잔 포함)
    * 분쇄한 커피 1봉지 - 6,000페소 (약 3,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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