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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따라 세계여행::139일] 안성탕면 드 마르세유
    세계여행/유럽_지중해_모로코 2009 2010. 10. 2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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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세유 생 샤를 역 (Gare de Marseille Saint Charles)


    0 9 . 0 9 . 1 9 . 토 | 프랑스 마르세유 France Marseille


    어젯밤, 숙소 찾느라고 무거운 배낭 메고 비 맞으면서 고생한 것을 핑계로
    씻고 나가면 체크아웃 시각에 10분 정도 남을만한 때에 최대한 맞춰서 늦게 일어났다.
    어제의 팍팍함에 대한 보상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오늘은 더없이 뒹굴뒹굴하고 싶었지만
    좀 더 싼 방으로 옮기기로 해서 방을 빼야했다.

    짐을 호텔의 보관실에 맡기고, 나온지 10년도 더 된 영화 '택시'의 택시가 내지르던
    마르세유의 길거리로 나섰다. 아점을 먹기 위해 어슬렁 거리다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던 차에
    기차역에 걸려있는 노란 M마크를 보고 빨려 들어가 어디론가 떠나가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
    간단히 샐러드를 먹었다.

    고전적인 외관에 현대적인 내부를 가진 기차역에는 버스터미널도 함께 있었다.
    온 김에 다음 목적지로 삼고 있는 아를(Arles)로 가는 버스를 알아보았지만 없었고
    어짜피 항구쪽으로 갈 참이어서 그 곳에 있는 여행안내소에서 알아보기로 하고 역을 나섰다.

















    '생 샤를'이라는 분위기 있는 이름을 가진 기차역 계단을 오랜 세월을 밟듯 내려와
    니스와는 또 다른 느낌의, 프랑스에서 3번째로 큰 도시라는 마르세유를 걷기 시작했다.
    주말이라 선 듯한 작은 길거리 시장을 구경하고 여행안내소에 들러 아를 가는 버스편을 알아보고
    물어물어 우리나라에서는 피씨방이라 칭하는 인터넷카페를 찾아갔다.

    피씨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그리고 많이 다른 가격의 인터넷카페에서 마르세유에서 마드리드로,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비행편의 온라인체크인을 하고 출력을 했다.

    1시간도 아닌 30분 사용료로 2유로(3,600원), 프린트 장당 0.2유로를 내고 한동안 항구를 거닐었다.

















    인터넷카페를 나오니 어느새 짙고 두꺼운 구름들이 해를 가리고 있었다.
    비옷을 가지고 오긴 했지만, 해가 다시 나기를 혹은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며
    요트와 낚시꾼과 갈매기와 생선가게와 관광객과 카페들로 구성된 항구를 걸은 후
    언덕 위에 있는 성당으로 향했다.

    높은 곳에 자리해 마르세유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고 해서
    올라가는 길이 만만하지는 않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길을 잘못 선택한 탓인지 그 경사가 아찔했다.

    겨울에 눈이 소복히 쌓이면 눈썰매장으로, 아니 스키나 스노보드를
    타기 위해 굳이 알프스로 가지 않아도 될 듯 한 기울기였다.
    그 경사면을 따라 세워진 집들도 가지런히 주차되어 있는 차들도
    신기하게 보였다. 집이고 차고 사람이고 간에 모두 살짝만 밀면
    모두 미끄러져 내려갈 것 만 같은 그 길을 때로는 직선으로 때로는
    지그재그로 때로는 올라온 길을 되돌아 보며 걸어 올라갔다.








    급한 경사가 끝날 무렵 커다란 황금색의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상이
    꼭대기를 장식하고 있는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Basilque de la Garde)'라는
    이름의 성당이 나타났다. 드디어 오르막이 끝났다는 기쁨을 만끽할 사이도 없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한다는 절망감을 씹으며 꾸역꾸역 성당으로 올라갔다.

    줄무늬가 새겨진 건물은 단순한 듯 하면서도 황금동상과 함께 화려한 것도
    같은 묘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단순과 화려를 오락가락 하던 느낌은
    내부로 들어서면서 화려쪽으로 완전히 종지부를 찍었다.

    내부 건축의 미적인 부분이나 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는 성당 내부에
    뱃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하며 걸은 배에 얽힌 사연보다는 천장을 치장하고
    있는 색의 조화에 눈과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굵은 적색의 줄무늬는 더없이 찬란한 황금색을 지긋이 안정시키면서도
    더 화려하게 보이게 했다. 마르세유를 사방팔방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것 보다도 건물 안과 밖을 장식하고 있는 이 굵은 줄무늬의 매력을
    알게 된 것에서 이 높은 곳까지 힘들게 올라온 보람을 찾을 수 있었다.


















    몽테그리스토프 백작의 배경이 된 이프성(Château d'If).


    클릭하면 큰 사진.










    성당 주변을 돌며 마르세유를 360도로 담아보고 내려오는데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가 마음을 이렇게 심난하게 한 적이 또 있었을까?
    여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비가 이제는 그만 발목을 잡았으면 했다.
    그리고, 누구나 한번쯤 쳐다 볼 법한 하얀색 비닐 비옷을 입고 비옷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점심도 저녁도 간식도 아닌 식사를 위해 다시 항구로 걸어갔다.

    성당에 가기 전, 항구를 돌아다닐 때 봐뒀던 깔끔해 보이던 젠젠(Zenzen)이라는 이름의
    동양식당에 들어갔다. 마치 패스트푸드점 같은 그 곳에서 늘 동양음식을 먹을 동양인들이
    왜 이런 식당에 올까 하는 눈빛을 스스로 만들어 내며 어색하게 주문을 했다.

    미국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봤던, 코를 처박고 서투른 젓가락질로 면을 건져먹던
    밑은 좁고 위는 넓은 사각형의 종이상자에 음식이 담겨 나왔다.
    배를 넉넉하게 채울 양은 아니었지만 익숙한 맛의 따끈한 국물이
    비로 젖은 속과 마음을 은근하게 달래주었다.

















    마르세유를 마저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를이며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며 다음 갈 곳들에 대해 알아보다
    다시 뭘 좀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나왔다. 라니가 화장실에 간 사이 낮에 나갈 때
    봤던 로비 한켠의 정수기를 다시 살펴봤다.

    분명 뜨거운 물이 나올 것 같은데 우리가 늘 보던 냉온수기나 정수기와는 뭔가가 달라
    뜨거운 물을 어떻게 뽑아야할지 모르겠어서 낮에 포기하고 나갔었었다.
    다시 차근차근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다 김이 펄펄 나는 뜨거운 물이 흘러나왔다.

    금맥을 발견한 것 보다 더 기뻤던 것은 라면을 먹을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주방을 사용할 수 있는 숙소에서 묵을거라고 니스의 아시아푸드슈퍼에서 우리나라 라면을 사 왔다.
    그런데, 주방이 없는 호텔에 올 수 밖에 없었고 라면은 그림의 떡이 되었던 것이었다.
    오늘 낮까지만 해도.....



    하나에 2천원을 넘게 주고 산 안성탕면.


    오늘밤과 내일밤 방값을 신용카드로 계산하고 라니와 함께 다시 한번 뜨거운 물이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일명 '뽀글이'를 해 먹기에 충분히 뜨거웠다. 외출한다고 열쇠를 리셉션에 맞긴 직후라 다시 열쇠를 받아
    들어가는게 왠지 어색하게 여겨졌던 소심한 우리는 식당 탐색을 하며 한동안 배회하다 호텔로 돌아갔다.

    그리고 배낭에서 라면을 꺼내 봉지가 세로로 찢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열었다.
    잘못 엇나갔다는 라면봉지에 물을 담을 수 없고 이 거사를 망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냄비에 끓일 때 보다 훨씬 적은 물이 투입되므로 스프 하나를 온전히 다 털어넣지 않는 것은
    뽀글이를 할 때 두번째로 주의해야 할 일이다.

    정성스럽게 스프를 반만 넣고 1층으로 내려가 조심스럽게 뜨거운 물을 받았다.
    손을 데지 않게 주의하면서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누가 오지 않나 눈치를 보면서
    담을 수 있는 최대한의 물을 넣고 계단을 사뿐사뿐 걸어 방이 있는 4층까지 올라갔다.





    정수기 옆에는 얇게 접혀 있는 종이컵이 아닌 플라스틱컵이 비치되어 있었고
    덕분에 편하게 덜어 먹을 수 있었다. 후루룩 거리며 여행중에 포크를 건네줬던
    어느 한국분을 감사하게 떠올렸다.

    낡고 작은 호텔, 그나마 의자가 하나 밖에 없어 탁자를 침대쪽으로 끌어다가
    한명은 의자에 한명은 푹 꺼진 침대에 앉아 뜨거운 안성탕면 국물을 들이켰다.
    라면 한 봉지에 몸과 마음이 함께 데워지며 엔돌핀이 흠뻑 분비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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