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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세부 2014 2016. 3. 14.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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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시간으로 치면 거의 새벽 3시 쯤에 

    잠든 것이었지만 이른 아침에 벌떡 일어났다.


    잠자리가 낯선 이유도 있겠지만 

    놓칠 수 없는 조식 때문이다. 

    집에서는 일절 챙겨먹지 않는 아침식사.

    하지만 여기는 필리핀의 

    아름다운 바닷가 앞 리조트.


    방에서 나와 정갈하게 관리된 정원 사이를 지나며

    어쩌다 리조트 직원과 마주치면 굿모닝 인사를 나누고

    바다와 마주한 수영장 위에 놓인 작은 구름다리를 지나

    식당으로 가는 일 자체가 여행의 일부이며

    큰 즐거움이므로 피곤하지만 놓칠 수 없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는 쉬었다.

    방에서, 수영장에서, 해변에서.

    휴양여행이니까.

    목적에 충실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가로운 시간 보내기도 무료해질 무렵

    덩달아 배도 고파졌다. 

    돌아서면 밥 때가 되는 건 

    한국이든 외국이든 변함이 없다.

    저녁은 시내에 나가서 먹기로 했다.

    리조트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의 시간을 미리 알아놓았었다.





    로비에서 리조트 입구까지 짧지 않은 길을 달린 후

    버스는 마을로 접어들었다.

    어제 이 리조트로 들어올 때는 어두운 밤이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었고 생각하지 못한 풍경이었다.


    화려하고 잘 차려진 리조트와는 많이 대조되는 

    광경이어서 첫 대면에 살짝 놀랬다.

    몇몇 집은 제대로 지어진 듯 했지만 다른 일부는 

    태풍이라도 올라치면 죄다 쓸려가지 않을까 

    염려스러울 정도였다.


    조금 더 번화가가 나올 때까지 

    마을 사이를 지나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리조트 투숙객과 서늘한 에어컨 바람으로 가득찬 

    깨끗한 버스가 훼방꾼 같이 느껴졌다.

    이질감은 죄책감으로 아주 조금 전이되기도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제주도가 생각났다.

    푸른 바다와 넓은 들판이 이어지는 공간 사이에 

    농가주택들이 낮게 자리 잡은 한적한 바닷가 

    시골마을로까지 리조트가 파고들고 있다.


    그 곳에 대형 철골콘크리트 구조물이 

    세워지는 것을 보고 한탄했었는데

    여기 세부에서 바로 그런 곳의 손님이 되어버린 것 

    같다 생각하니 어딘가에 부딪힌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아름다운 곳을 편하게 즐기려하고

    정작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파괴적인 행위로 

    여기는 이기적이기도 하고 모순적이기도 한 생각과 마음.






















































    큰 다리를 건너 완전한 도심으로 빨려들어가며

    그 생각은 잠시 잊혀진 듯 잊었다.

    셔틀버스는 대형쇼핑몰 앞에 멈춰섰다.

    높은 건물, 많은 사람, 화려한 조명 등이 방금 

    버스 안에서 본 장면들을 꿈 같이 만들어버렸다.



    일단 인터넷에서 곁눈질 해 뒀던 식당을

    찾아가 식사를 했다.

    외출의 목적은 오로지 식사.

    덤으로 필리핀, 세부의 일상 보기.

    그래서 리조트로 돌아가는 셔틀버스의 

    시간까지는 여유로왔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 과자, 과일, 젤리 등이 

    빙수 위에 올려진 '할로할로'를 맛 보았다.

    마트에도 들렀다. 필리핀에서 빠트릴 수 없는 

    망고도 사고 간식으로 먹을 현지 컵라면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카페에 들러 

    커피도 한 잔 마셨다. 

    Bo's Coffee.




    쇼핑몰에 있는 동안에는 카메라를 꺼내지 않았다.

    온전히 쉬기 위해 온 여행이라고 해도 굳이 사진 찍는

    것까지 자제할 필요는 없었지만 무언가 하나라도 

    덜 하려 했던 것 같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쏟아지는 많은 사진들과 정보,

    오기 전에 이미 와 봤던 것 같은 느낌을 일으키는

    사전 관찰에 피로감을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아쉬움이 남는다.

    여행에서 남는 것이 사진 밖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행의 추억을 되새김하는데 사진의 역할인 큰 것은

    분명한 듯 싶다.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 

    한 손에는 망고가 든 마트의 비닐봉지. 

    별 것 아닌 일상 같은 모습이지만

    1월에 여름 행색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다. 

    숙소의 셔틀버스가 동네 마을버스인 듯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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